“일반적으론 행복이란 소유하거나 누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진석 추기경님은, 행복이란 버리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하셨지요.”
지난달 28일 오전. 전날 밤 선종(善終)한 정진석 추기경의 장례일정과 관련해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가 브리핑에서 한 발언입니다. “남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가장 큰 희생”이라고도 했지요. 다소 뜻밖이었습니다. 정 추기경님이 평소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고 자주 언급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허 신부님의 설명을 통해 그 행복의 실체를 알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행복이란 ‘모으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나누는) 것’이며, 버리는 것 중 최고의 자기 희생은 ‘자신의 시간을 남에게 내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허 신부님에 따르면 정 추기경은 시간을 철저히 관리했다고 합니다. 새벽 4시반쯤 기상해 저녁 10시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분단위로 쪼개 생활했다고 합니다. 이런 습관은 6·25전쟁 후 발명가 대신 ‘마음의 의사’(성직자)로 방향을 바꾸어 대신학교(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할 때부터 이어져왔다고 합니다. 게다가 1970년 만 39세 나이에 청주교구장 주교로 임명되고 서울대교구장 대주교, 추기경을 쉴 틈 없이 잇달아 맡았으니 자신의 시간은 온전히 교회와 사제, 신자들에게 다 내준 삶이었겠지요. 그 바쁜 와중에 매년 한 권씩 책을 내겠다는 약속을 60년 동안 지켜왔으니 시간을 얼머나 철저히 관리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요.
정 추기경님의 절약 정신은 유명합니다. 거의 화를 내지 않지만 결재 서류가 이면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호통쳤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바지 한 벌을 18년 동안 입고, 절대 외식하지 않고, 한여름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틀지 않을 정도였지요. 그렇게 스스로를 위해선 최소한으로 살면서 절약한 정 추기경이 선종을 예감하곤 통장을 털어 무료급식소 등에 기부하고 그래도 남은 통장 잔액 800만원은 투병·장례기간 도움을 준 분들을 위해 선물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졌지요. 그렇게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나눠주고 통장 잔액을 소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허 신부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정 추기경이 가장 절약한 것은 통장 잔액이 아니라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아끼는 시간을 남에게 내주는 것이 진정한 자기 희생이라는 말씀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정 추기경님의 ‘시간 이야기’를 들으면서 법정 스님의 ‘빠삐용 의자’가 떠올랐습니다. ‘법정 스님의 성지’ 전남 순천 송광사 불일암 툇마루 옆엔 ‘빠삐용 의자’가 있습니다. 통나무를 잘라 만든 나무 의자에 법정 스님은 ‘빠삐용’이란 이름을 붙였지요. 중장년이라면 명절 때마다 ‘특선 영화’로 TV에 나오던 ‘빠삐용’을 기억하실 겁니다.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했지요. 빠삐용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체포돼 절해고도(絶海孤島) 감옥에 갇혀 끊임없이 탈출하려 애씁니다. 탈출 시도 끝에 독방에 갇혀 기진맥진 상태였던 빠삐용은 환영을 보지요. 환영 속에서 재판관은 무죄를 주장하는 그에게 “너의 죄는 삶을 낭비한 것”이라고 말하지요. 이 영화를 본 법정 스님은 ‘빠삐용 의자’를 만들고 거기 앉을 때마다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법정 스님도 자기관리에 철저한 분이셨지요. 법정 스님도 유언으로 ‘머리맡의 책 몇 권을 신문배달소년에게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나누고 무소유로 떠났습니다.
통장 잔액을 다 털어 주변에 선물한 정 추기경, 머리맡에 두고 즐겨 읽던 책마저 나눠주고 무소유로 떠난 법정 스님 모두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정진석 추기경 선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시간 나눔=자기 희생’이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남에게 나눠줄 것이 있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그것이 ‘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돈은 사람에 따라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재산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