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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과 '향기'를 남긴 법정 스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마치 이 세상의 맑음과 향기가 다 사라진 듯하다. '무소유의 삶'을 바탕으로 한 글들로 유명한 스님께서 어린이를 위한 책도 몇 권 펴냈다.
그 가운데 하나인 '참 맑은 이야기'(동쪽나라 펴냄)의 머리말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즈음은 세상이 급히 변하여 좋고 나쁜 것, 맑고 흐린 것도 그 평가가 불분명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어린이 여러분이 나날이 자신을 돌아보는 맑고 고요한 시간을 가지며 흘러가기를 나는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일의 주인공인 여러분들이 사랑과 평화와 나눔의 정신으로, 이웃과 더불어 하염없이 선하고 아름답게 살았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맑고 향기로운 관심이 느껴지는 말씀이다. 이 책에 나오는 '하루에 한 가지씩 착한 일을'이란 글을 그대로 옮겨 본다.
작은 선행이라도 좋으니 하루 한 가지씩 직접 실행으로 옮겨야 합니다. 작고 미미한 것일지라도, 남이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삶의 질서입니다. 늘 하루 한 가지씩 작은 선행이라도 하면 차차 내 삶에 질서가 생깁니다.
그 일상적인 행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거듭거듭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넘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이웃을 향한 행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지, 경전을 많이 봤다고 해서, 법문을 많이 들었다고 해서 행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날마다 한 가지씩 착한 일을 듣거나 행할 수 있다면 그날 하루는 헛되이 살지 않고 잘 산 것입니다.
참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했는가, 하루 한 가지라도 이웃에게 덕이 되는 행동을 했는가 안 했는가에 따라서 그날 하루를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가 결정됩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작은 선이라도 좋으니 하루 한 가지씩 행해야 합니다. 그 실행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거듭거듭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루 한 가지라도 착한 일을 듣거나 행할 수 있다면 그날 하루는 결코 헛되이 살지 않고 잘 산 것입니다. 이 말을 거듭 명심해야 합니다.
법정 스님께서는 앞으로 당신의 책을 그만 내라고 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너무 아쉽다. 아이들을 위한 책만이라도 예외로 할 수는 없을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스무 번도 더 읽었다는 법정 스님이다. 선한 하오의 햇살이 창호에 번지는 시각에 어린 왕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스님이었다.
'네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누워서 들어. 그래야 네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기 때문이야.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고 날아다닐 수 있는 거야.'('영혼의 모음-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여튼 법정 스님께서는 아이들이 어린 왕자를 읽고 많은 걸 느끼기를 바라셨다. 아니 우리 아이들 모두를 '어린 왕자'로 여기셨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쯤 스님께서 어린 왕자로 환생해서 어린 왕자인 아이들과 어울려서 맑고 향기로운 행복을 누리실지 모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