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숙 기사입력 2017. 07. 03 16:16
<24> 쇳대박물관
쇳대박물관 4층 상설전시장에는 고려와 조선 시대 때 사용됐던 각종 자물쇠와 목가구에 쓰인 각종 자물쇠 함, 궤(櫃), 인장 함, 대문에 사용된 둔테, 소깃장 등 3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사진 제공=쇳대박물관
열쇠가 사라지고 있다. 숫자와 카드, 리모컨, 그리고 지문·음성·안구 등 생체 인식이 빠르게 열쇠를 대체 중이다. 우리나라에 서양식 열쇠가 대중화된 것은 1970년대 초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어떤 잠금장치를 사용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 있다. ‘쇳대박물관(Lock Museum)’이다.
상설전시장 입구에 전시된, 법정 스님이 쓴 ‘쇳대’ 글씨는 박물관 CI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 제공=쇳대박물관
국내 유일의 ‘자물쇠’ 박물관
쇳대박물관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소극장이 즐비한 ‘문화 특구’ 대학로에 자리 잡은 유일무이한 박물관이자,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물쇠를 주제로 한 공간이다. ‘쇳대’란 ‘열쇠’의 방언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철물 디자이너 최홍규 관장이 오랫동안 수집한 철물 관련 유물 중 잠금장치와 관련된 것만 모아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과 과학적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지난 2003년 겨울 대학로에 문을 열었다.
특별함은 박물관 외관에서부터 묻어난다. 건축가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2002)로 선정된 바 있는 승효상 선생이 설계한 이 4층 규모의 건물은 그 자체가 작품이다. 외벽을 두른 붉은색 특수 강판과 감각적인 디자인이 시시각각 바뀌는 대학로 풍경을 아름다움과 묵직함으로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모란문은입사 자물쇠. 사진 제공=쇳대박물관
4층·260여㎡ 규모…300여 점 전시
상설 전시실은 4층에 있다. 규모는 260여㎡. 공간은 협소하지만 볼거리가 많다.
먼저 입구에는 ‘쇳대’ 두 글자가 쓰인 서예 작품이 장승처럼 지키고 있다. 강한 쇠처럼 힘이 넘치는 필체가 예사롭지 않다. 법정 스님이 쓰신 이 글은 박물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CI(Corporate Identity)로 사랑받고 있다.
실내에 들어서면 각양각색의 자물쇠가 관람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고려와 조선 시대 때 사용됐던 각종 자물쇠와 목가구에 쓰인 각종 자물쇠 함, 궤(櫃), 인장 함, 그리고 대문의 빗장을 지르는 부분에 사용했던 잠금장치 중 하나인 둔테, 소깃장 등 3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둘러보면 대량 생산된 열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묘한 설렘이 전해질 정도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 상당수다.
조선 시대에 사용됐던 자물쇠는 ‘ㄷ자형’ ‘둥근원통형’ ‘함박형’ ‘물고기형’ ‘용형’ ‘거북형’ 등 그 형태가 다양해 보는 재미가 있다. 두석(豆錫·놋쇠) 장인들이 일일이 두드리고, 쇳물을 부어 만들어 외형이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같은 것이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수공예 작품들이다. 자물쇠 끝이 살짝 하늘로 꺾여 올라간 부분이 줏대인데, ‘줏대 없다’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조선 시대 자물쇠가 단아하다면, 고려 시대 자물쇠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당시 왕가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용머리 자물쇠’는 황금색의 수려함과 정교한 디자인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 밖에 숙종 시대 양갓집 규수가 시집갈 때 친정 부모가 딸의 행복을 기원하며 혼수로 만들어 보낸 열쇠패도 꼭 관람해야 할 귀한 유물 중 하나다.
유럽, 중국, 인도 등 그 나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옛 자물쇠와 목각 잠금장치들도 전시돼 있어 비교 감상이 쉽다.
혼례용 열쇠패. 사진 제공=쇳대박물관
무형문화재 김극천 장인 도구도 감상
전시실 한쪽에 마련된 두석장(豆錫匠) ‘김극천’실은 이 박물관만의 특화 공간이다. 현대화로 잊혀 가는 장석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의 하나로 4대째 가업을 이어온 무형문화재 김극천 장인의 손때 묻은 도구들이 자리 잡고 있다.
김미현 학예사는 “서양의 열쇠가 힘과 권력을 상징했다면, 우리 전통의 자물쇠는 보호 중심의 어울림의 문화를 나타낸다”며 “특히 길상의 뜻을 담은 한자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길상어문’들을 새겨 넣어 장수, 부귀, 건강과 평안, 자손 번창 등을 염원했던 우리 조상들의 얼과 잠금장치에 담긴 전통문화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안내>
관람 시간: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관람료: 2000~4000원, 군인 단체는 3000원
대중교통: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한국방송통신대학 뒤)
문의: 02-766-6494~6
이화동 벽화마을. 사진 제공=쇳대박물관
걸어서 10분 거리 ‘이화동 벽화마을’ 함께 둘러볼 만해요
서울 동숭동 대학로를 즐긴 후 인근 이화동 벽화마을을 그냥 지나치면 섭섭하다.
쇳대박물관에서 어른 걸음으로 10분만 언덕길로 올라가면 근대화 시대로의 타임 슬립(time slip)을 경험할 수 있다. 이화동은 600여 년 역사를 품은 낙산성곽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다. 광복 이후 주민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근대 유물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거래될 옷들을 만들던 봉제공장이 하나둘 사라진 자리에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과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10여 개 소규모 갤러리와 전시관을 열었다. 현재는 먹을거리, 즐길 거리, 볼거리 넘치는 문화 마을로 환골탈태했다.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이곳은 알록달록 익살스러운 벽화와 낙산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감상하는 서울 야경이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