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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11-21

    [불교신문] [사설]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 뿐이다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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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 뿐이다
  •  불교신문
  •  승인 2018.08.2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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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단의 혼란상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주말에는 어느 대형교회의 부자 세습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더니 한 주가 시작되자마자 종단의 좋지 않은 소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부끄러운 모습이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냐며 게정을 부릴 상황이 아니다. 이유가 어떻게 됐든 국민들을 더 덥게 하고 더 힘들게 하는 종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종단 위신은 끝을 모를 심연 속으로 추락하고 신도들의 자괴감도 이루 말 할 수 없다. 신도들은 만나기만 하면 ‘친구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다’, ‘집에서 절에 가지 말라고 한다’며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작금의 상황과 관련 없는 스님들은 더 격앙돼 있다. ‘총무원을 없애야 한다’거나 ‘종단 위신이 밑바닥 까지 떨어져서 모두 잃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등 극단적 주장을 서슴없이 토로한다. 

격앙된 종단 안팎의 여론을 잠재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수행자의 초심(初心) 뿐이다. 길을 잃으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듯 출가 당시의 초심을 되새기면 해결 방법이 나올 것이다. 출가 후 수 백 수 천 번도 더 새겼을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첫 구절 “처음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낸 사람은 반드시 나쁜 벗을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이를 친하고 가까이 하여 오계와 십계 등을 받아서 지키며 오직 부처님의 성스러운 말씀을 의지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허망한 말을 따르지 말라”는 이 짧은 구절에 출가자의 근본 행과 지향점이 다 들어있다. ‘계 잘 지키고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하라’는 초심이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모든 허물은 자기 안에 있지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수행자들이 초심 대로 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지 달리 다른 곳에 원인이 있지 않다는 기본 가르침만 되새긴다면 어떤 혼란도 능히 잠재울 수 있다. 

종단 향배를 놓고 온갖 해석이 난무하는데 초심에서 벗어나면 갈등으로 결론 난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하다. 지난 수 십 년의 종단사를 통해 숱하게 목도한 바다. 모두 개혁을 내세우고 나 밖에 적임자가 없다고 자부하며 종단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지만 야금야금 종단 재산 탕진하고 손에서 모래 빠져나가듯 신도와 출가자 수가 줄어들 뿐이었다. 1964년 10월11일자 불교신문에 법정스님은 ‘부처님 전상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현재 한국(韓國)이라는 이 헐벗은 땅 덩이 안에서 자비하신 당신의 가르침은 이미 먼 나라로 망명(亡命)해 버린 지 오래 이고, 빈 절간만 남아 있다는 말이 떠돕니다. 그리고 이른바 당신의 제자(弟子)라는 이들은 마치 투쟁견고시대(鬪爭堅固時代)의 표목(標木) 같은 군상(群像)들로 채워져 있다고도 합니다.” 

누군가 54년 전 법정스님이 진단하며 애통해했던 종단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보다 비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비록 시비와 혼란은 일어났지만 참회하며 초심을 지키는 수행자가 있어 그래도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안도할 수 있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불교신문3416호/2018년8월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