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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 22-11-21

    [문화일보] 살며 생각하며 세 마리 원숭이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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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교육학

골동품 가게서 구해 보관하고 있는
입·눈·귀 가린 백동 원숭이 세 마리

나쁜 말 하지 말고 나쁜 것 보지 말고
나쁜 소리 듣지 말라는 소중한 의미

주변 사람과 본의 아니게 다툰 이후로
입조심 눈조심 귀조심 교훈 되돌아봐


봄볕 화창하던 어느 날, 관악산 기슭의 전망 좋은 레스토랑으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카운터에는 나무로 만든 세 마리 원숭이상이 놓여 있었다. 까만 눈동자를 가진 원숭이들이 직사각형 나무 막대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원숭이의 두 손이 각각 입과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다. 나무 받침대에는 독일어로 ‘Ich sage nichts, Ich sehe nichts, Ich hore nichts’라고 적혀 있었다. 번역하면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보지 않습니다. 나는 듣지 않습니다’이다. 목각 원숭이들은 제각기 기능이 있었다. 음료 병 따개가 되기도 하고 와인 코르크 따개 역할도 했다. 그 원숭이들을 보니 문득 내 연구실에 있는 세 마리 원숭이가 떠올랐다.

내 연구실에도 백동(白銅) 원숭이 세 마리가 있다. 크기는 10㎝ 정도인데 오동통한 몸과 웃는 표정이 무척이나 귀엽다. 한 마리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고, 또 한 마리는 귀를 막고 있으며, 다른 한 마리는 눈을 가리고 있다. 이들 원숭이를 내 연구실에 들여놓게 된 사연이 있다. 법정 스님이 지은 ‘인도 기행’이란 책을 읽었다. 그 책에 원숭이 세 마리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스님은 간디를 무척이나 존경했다. 스님의 무소유 철학은 간디의 영향이 컸다. 스님은 여행 중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뉴델리에 있는 간디기념박물관을 방문했다. 그곳에 간디가 생애의 마지막을 보낸 방이 있었다.

방에는 베개, 염주, 힌두 성전과 기댈 수 있는 작은 부대, 물레, 지팡이, 샌들,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간디가 무척이나 아꼈던 눈과 귀와 입을 막은 세 마리 원숭이가 놓여 있었다. 스님은 그 세 마리 원숭이의 의미를 ‘원숭이가 손으로 입을 가린 것은 나쁜 말을 하지 말고, 눈을 가린 것은 나쁜 것을 보지 말고, 귀를 가린 것은 나쁜 소리를 듣지 말라는 뜻인데, 이것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보지 말고, 아무것도 듣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입은 좋은 말만 하고, 눈은 좋은 것만 보고, 귀는 좋은 소리만 들으라는 뜻이다’라는 내용으로 풀이했다.

나는 스님의 그 말씀에 공감했다. 그래서 세 마리 원숭이를 구하려고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스님이 본 그 원숭이들은 구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백동으로 만든 세 마리 원숭이를 구입하게 됐다. 이 원숭이들은 인터넷에서 본 원숭이들과 비교가 됐다. 인터넷에 있는 원숭이들은 사납게 생겼고, 함께 붙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구한 원숭이는 각기 떨어져 있으며, 오동통하고 환하게 웃는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 세 마리 원숭이를 연구실에 놓아두니 나의 입과 눈과 귀를 더욱 조심하게 될 것 같아 든든했다.

세 마리 원숭이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에서 시작된 것 같다. ‘논어’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이 스승에게 인(仁)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스승은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어떤 사람이 이 말을 듣고는 눈 가리고 입 가리고 귀 가린 세 마리 원숭이를 만들었지 않나 싶다. 그 원숭이가 인도로, 일본으로,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의 모서리 네 기둥 위쪽 처마 아래에도 목조 원숭이상이 있다. 그런데 그 원숭이는 두 팔로 법당 기둥을 고통스럽게 떠받들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법당을 짓던 도편수가 사귀던 주모가 사랑을 버리고 돈을 챙겨 야반도주하자 그 여인을 형상화해 만든 나부상(裸婦像), 또는 원숭이상이라고 한다. 불법(佛法)을 듣고 참회하라는 심오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풀이가 뒤따른다. 불교에서는 삶을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라고도 하고, 사바(娑婆)세계를 의역해 인토(忍土)세계라고도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고통은 숙명이기에 이를 피하려 하지 말고 참고 견뎌 내라는 뜻이다.

다시 세 마리 원숭이 이야기로 돌아가자. 세 마리 원숭이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방탄소년단(BTS)이 ‘페이크 러브(Fake Love)’라는 노래를 부르며 세 마리 원숭이처럼 입 가리고 눈 가리고 귀 가리고 춤을 추어 세계인들로부터 재미와 함께 공감을 끌어내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입조심, 귀 조심, 눈 조심을 하게 된다. 옛 어른들은 ‘나이가 들수록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고 했다. 요즘 이를 실감한다. 얼마 전부터 대학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교수와 직원도 만나고, 학생들도 만난다. 또한, 외부 인사도 만난다. 요직을 맡은 사람이 말실수를 하게 되면 그 파장은 크다. 그래서 더욱 각별히 조심하게 된다. 예전에 수업시간에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었는데, 그것이 의도와는 다르게 학생에게 전달돼 상처를 준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수업에서 내용을 벗어난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내가 아끼던 교수와도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그 교수를 위해 한 말인데 그렇게 받아들이질 않았다. 그것이 발단이 돼 사이가 멀어지게 됐다. 그래서 동료 교수들과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지내겠다고 결심했다. 이 모두가 내 입과 귀 그리고 눈이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했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었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요즘에 내 연구실에 있는 세 마리 원숭이를 한 마리씩 내 사무실로 옮겨 오고 있다. 우선 입 가린 원숭이부터 데려왔다. 다음 주에는 눈 가린 원숭이를, 그다음 주에는 귀 가린 원숭이를 데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