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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스스로 행복하라
법정 지음/샘터(2020)
지난해 말 갑작스럽게 월간 <샘터>가 휴간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때 매달 50만 부를 발행했던 월간 <샘터>가 창간 50주년을 앞두고 경영 악화와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견디지 못해 사실상 폐간 수순을 밟는다는 소식은 ‘잡지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1970년 4월에 창간해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과 ‘일상의 감동’을 전해왔던 잡지가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그리고 무려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월간 <샘터>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독자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자들의 십시일반 후원 문의가 출판사로 이어졌고, 결국 한 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월간 <샘터>를 소생시켰다. 산업화 시대에 힘겨운 시절을 버티게 해줬던 잡지가 폐간 위기에 처하자 독자들의 따스한 응원으로 잡지가 부활했다는 소식은 분명 한국 출판 역사의 훈훈한 미담으로 남을 것이다.
월간 <샘터>는 어떤 식으로든 독자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을 터. 2020년 <샘터> 창간 50주년을 맞이해 법정 스님의 대표작들을 모은 수필집 <스스로 행복하라>를 최근 출간했다. 책의 표지에는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특별판’ ‘샘터 50주년 지령 600호 기념판’이라고 적힌 띠지가 세로로 둘려져 있다. 잔잔하면서도 놀라운 힘이 느껴지는 법정 스님의 문장을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한 매체가 월간 <샘터>였기에, 이번 <스스로 행복하라>의 출간은 나름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법정 스님의 열반 10주기를 맞이해 그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을 위한 ‘특별판’이면서 동시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월간 <샘터>의 부활을 알리는 ‘기념판’이다. “스님의 열반 10주기에 샘터 50주년, 잡지 나이 600호라는 역사가 겹치는 게 결코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어디에 계실지는 모르지만, 다시 엮은 스님의 말씀과 글을 인자하고 그윽한 첫 만남 때의 그 눈빛으로 읽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월간 <샘터> 발행인이 책에 남긴 글에서는 안도감마저 느껴진다.
‘특별판’이자 ‘기념판’으로 출간된 <스스로 행복하라>는 출간되자마자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고,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문장을 찍은 사진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무소유>를 시작으로 <오두막 편지> <홀로 사는 즐거움> 등 여러 수필집을 통해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죽비 같은 가르침을 전해준 법정 스님은 2010년 돌아가시면서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겠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법정 스님의 유언이 알려지면서 당시 서점가에서는 법정 스님 책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대표작인 <무소유>는 중고시장에서 정가의 수십 배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무소유의 가르침이 무색하게 법정 스님의 책을 소유하려는 일부 독자들의 욕심이 과했던 탓이었다.
채우는 것에만 급급했던 현대인들에게 비움의 미덕을 가르쳐주신 법정 스님. ‘인간사 괴로움의 원인인 집착과 욕망을 내려놓으라’는 일관된 메시지가 이번 책 <스스로 행복하라>에 소개된 여러 수필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전해져 온다.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은 맛이 난다고 했던가. 법정 스님의 오래된 글에서도 그 깊이와 무게가 전해져온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