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소품전, 22일까지 카페꼼마(빵꼼마)서
·판화집 <내일이 와준다면 그건 축복이지!> 속 원화 20여점 선보여
“이철수의 판화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잔잔한 기쁨과 함께 하루하루의 삶에 새로운 성찰을 갖게 된다…”. 깐깐한 안목으로도 잘 알려진 법정스님은 생전에 목판화가 이철수의 작품을 이렇게 평했다.
그래서일까. 예나 지금이나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첫 전시회를 가진 지 내년으로 40주년을 맞는 판화가 이철수(66). 비우고 덜어내 더 이상 빼낼 것이 없을 만큼 담백한 선화같은 그림이다. 깊고 넓은 사유에서 비롯되는 시적 문장이 함께 어우러진다. 그림을 그리고, 목판에 칼로 새기고, 찍어내는 판화 특유의 맛 또한 있다. 너나 없이 작품을 한참씩 들여다 보고 또 되새김질을 한다.
작가에게 “왜 많은 이들이 작품을 좋아하고 또 곁에 두고자하는 것일까”라고 10여년 전에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나 자신을 지키고, 심신을 곧추세워 더러운 삶을 살지않기 위해 애쓰고 고민한 결과가 공감을 부르는 것 아닐까”하고 짐작했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팍팍하고 평범한 삶이지만 하루하루의 내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게 만드는 성찰의 힘이 있다. 사랑하고 나누고 착하고 다정하게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 인간과 뭇 생명 사이의 연대와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 정의롭지 못한 권력과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대한 날선 비판도 있다. 이런저런 삶의 경험과 생각들을 그의 작품과 동화시키게 된다.
이철수의 판화전 ‘내일이 와준다면 그건 축복이지!’가 카페꼼마(빵꼼마·서울 연남동) 아뜰리에에서 열리고 있다.
최근 판화 70여점과 산문을 엮어 펴낸 판화집 <내일이 와준다면 그건 축복이지!>(문학동네)의 출간을 기념하고, 판화집 속 원화를 선보이는 자리다. 그동안 “생각나는 대로 그리고 새긴” 소품들을 모은 전시다. 전시를 둘러보던 작가 지인이 “이철수 작품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베이커리·북 카페의 작은 공간에서의 전시냐”라는 말에 작가는 “젊은 작가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인데,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기에 내 전시가 의미있겠다 싶어서”라고 씩 웃는다.
소품들이지만 작가의 작품철학이 물씬 녹아 있다. 뜨거운 민중판화 활동 중 충북 제천 박달재 아래로 내려가 30여 년째 더 뜨겁게 농사를 지으며 작업하는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가 하나된 작품들이다. 주변에서 만나는 순수한 사람들, 나락 한 알에 우주의 존재가 내포돼 있음을 살핀 무위당 장일순 선생처럼 ‘밝은 눈’과 깊은 사유로 일상에서 길어올린 깨달음이 있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 서늘한 통찰과 촌철살인의 따끔함도 있다.
황토색 그릇 두개를 입이 맞닿게 그리고는 ‘함께 사는 건 이렇게 흘리면 받고 받아 고이게 하는 두 그릇’이라 쓴다. 빈 의자를 가운데 두고는 ‘인생에 제일 큰 동무는 아무래도 외로움이지…’라고 새겼다.
“자본과 시장이 사람 사는 세상을 파편화하고, ‘함께’가 잊혀진 자리엔 무력하고 외로운 개인이 남는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시장이 강요하는 분열된 나와 내 안에 본래 있던 나를 구별하기 위해 마음에 드나드는 여러 감정과 생각을 가만히 살피는 공부가 필요하죠.”
한여름 피어난 부추꽃을 상찬하는 작품에선 작가의 평소 일상적 삶의 모습이 그 밝은 눈과 함께 읽혀진다.
사방탁자를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뫼비우스띠같은 검은 그림자로 사회적 소수자들의 끝없는 고통을 표현하곤 선한 인간성의 응원을 촉구한다.
커피 한 잔, 늙은 호박, 똥, 담배 등 모든 것이 작가를 통해 새롭게 다가온다. 땀흘리며 일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작가는 ‘물가 버드나무 한그루 당신을 막아선 것 아니듯, 당신 곁 누구도 당신 인생을 가로막고 있지 않아!’라며 버드나무를 새겼다. “당면한 어려움에 힘이 들 때라도 마음조차 발목 잡히면 안된다, 마음이 힘이 되어야 한다”고 지친 이를 북돋워준다.
이 작가는 “욕심 없이 사는 일처럼, 욕심 없이 그리는 일도 쉽지 않다”며 “이번 작품들은 평소에 욕심없이 그리고 새긴 작품들로 편하게 보셨으면 좋겠다. 코로나시대에 작은 위로가 되고, 스스로의 삶을 살피는 힘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11월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