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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7-03

    [미주중앙일보] [뉴욕의 맛과 멋] 하쿠나마타타(HakunaMatata) - 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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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하쿠나마타타(HakunaMatata).

입력 2020.11.28 09:38 

어느 해보다 조용한 추수감사절을 보냈다. 첫째는 시댁인 이탈리아에 가 있고, 둘째는 바로 그날 뉴욕서 돌아와 자가격리를 해야 했고, 나만 막내네와 목장에서 지냈다. 그래도 괜히 멜랑꼬리 해져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심란했다. 생각은 생각을 낳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철학적인 문제까지 비약한다. 그 와중에 용수 스님이 한국불교의 세 가지 집착으로 ①무소유, ②고행, ③공(空)을 언급한 글을 발견했다.

무소유는 원래 돌아가신 법정 스님의 대표 화두지만, 무소유라는 것처럼 황당한 말도 없다. 어떻게 아무것도 없이 살란 말인가. 그래도 삶이 행복한가. 용수 스님이 간결하게 판단해줬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말란 게 소유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란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적당히 과하지 않게 가져야 살기도 편하고, 마음도 편한 법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과한 인간의 욕망을 지칭한 것이지 절대적인 무소유는 아닐 것이다.

용수 스님은 한 번의 고행으로 사람이 성불하는 것은 아니고 꾸준히 자신을 닦아가는 중에 변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톨릭에서도 우리의 삶을 예수님의 모상이 되기 위해 노력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내 경우만 봐도 처음 시련에 부딪혔을 땐 나한테 왜 이런 불행이 닥치는가, 억울하고 분했다. 하지만, 시련이 거듭되면서 비로소 성장해가는 나를 발견하고 은총임을 깨닫게 되었다.

공(空)은 허무주의와 직결된다. 인생이 허무하긴 하지만, 그냥 허무 자체라고 하면 그야말로 공허하지 않은가. 이에 대해 용수 스님이 자비가 없는 공은 구속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말에서 자비를 사랑이라는 말로 바꾸어봤다. 성경을 한 단어로 집약한 단어도 사랑이다. 용수 스님은 사랑은 자신도 남들도 버리지 않고, 변하지 않고, 끝나지 않고, 모든 것을 살리고 치유하며, 집착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고, 내려놓는 것, 받아들이는 것이니, 여기까지 오는데 인연 닿은 모든 분께 사랑을 고백하고 약속하라고 설문을 이어갔다. 비로소 자비가 없는 공은 구속이라는 의미가 막연하게나마 그려진다.


그런데 사랑 고백이라. 사랑이란 것은 결국 감사와 상통한다. 아마도 추수감사절을 지냈기에 감사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 같다. 잔치는 사람도 북적대고, 전 부치는 냄새가 진동해야 제맛이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어느 해보다 썰렁하게 지내긴 했어도, 추수감사절은 우리 인간이 추수를 끝내고 풍요한 먹을 것을 주신 신께 감사드리는 날이다. 우리 모두의 인연을 감사하는 날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선물을 감사하며 모든 이들과 사랑을 나누며 적당히 소유하고 적당히 부대끼면서 소소하게 평화를 누리는 삶. 동양학에서 일찍부터 설파한 중용이 새삼 오늘의 삶의 지침으로 재탄생하는 것 같다.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란 말은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 킹’에 나오는 노래 제목이다. ‘다 잘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는 뜻이다. 세상은 세상의 질서로 움직이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질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란 걸 우리는 지난 일 년 동안 철저하게 학습했다. 그러니 무슨 일에도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모두 감사히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편안하게, 즐겁게 사는 게 최선이다. 하쿠나 마타타!를 거듭 외치면서.


이영주 / 수필가 

출처 : 중앙일보(https://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