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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7-04

    [이로운넷] [백선기의 세상읽기] 26. 게으름뱅이 사회운동이여 안녕! - 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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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기의 세상읽기] 26. 게으름뱅이 사회운동이여 안녕!

  • 이로운넷=백선기 책임에디터  
  •  입력 2020.12.02 17:55 
  •  수정 2021.01.0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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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우리’라는 이름으로 포용하고 행동할 때

오늘의행동 사회적협동조합이 동전을 활용한 투표방식으로 여론을 알아보는 도구로 제작한 시소디베이터
오늘의행동 사회적협동조합이 동전을 활용한 투표방식으로 여론을 알아보는 도구로 제작한 시소디베이터

12월 달력을 보며 2020년 한 해도 저물어감을 새삼 느낀다.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지난 시간을 반추해볼 때 며칠 전 만난 한 활동가의 이야기는 내게 큰 울림을 줬다. 

오늘의행동 사회적협동조합 정경훈 이사장의 말이다. 

“아름다운재단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이 뭔지 아세요? 통계적으로도 그렇고 아동, 장애인 분야가 기부 선호도가 제일 높아요. 실제 기부도 많이 이뤄지고요. 그런데 현실로 와보면 우리 사회는 가난한 아동과 장애 아동들이 우리 동네에 와서 살거나 동네 학교에 다니는 걸 싫어하고 반대 시위까지 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런 상반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였어요.”

정 이사장은 그 문제를 풀어보겠다면서 비영리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동료 2명과 함께 비영리 스타트업에 도전했다. 이들이 말하는 해법은 불쌍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이 나와 멀리 있고 분리된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살아가는 이웃이고 저들과 나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포용할 때 문제 해결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공감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 많아질 때 사회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30여 년 전 양천구 신정동 사원주택조합 아파트에 입주하던 때가 생각났다. 달랑 2동짜리 국민주택규모의 서민 아파트였지만 그 앞으론 유명 건설사가 짓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당시 그 자리에는 아직 이사를 가지 못한 판자촌 사람들이 남아있었고 종종 철거반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목격됐다.

우리 아파트 안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미끄럼틀과 시소, 모래밭 그리고 몇몇 놀이기구가 있었다. 어느 날 경비 아저씨가 한 무리의 아이들을 쫓아내는 걸 보고 영문을 몰라 물었다.

판자촌 아이들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걸 입주민들이 싫어한다는 것이다. 또 엘리베이터를 층별로 눌러놓고 장난을 쳐서 골칫거리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난 참 별것도 아닌 일로 애들한테 상처를 준다고 마뜩지 않아 하며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요?’ 라고 말했지만 더 이상의 의견을 개진하진 않았다.

나처럼  머릿속으로 생각은 많지만 행동으론 잘 옮기지 않는 것을 가리켜 슬랙티비즘(Slacktivism)이라고 한다. 게으름뱅이(slacker)와 사회운동(activism)을 더한 복합어로 노력이나 부담을 지지 않고 사회운동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SNS에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는 것 만으로 그다지 사회에 의미있는 영향을 주지 않았음에도 마치 사회에 좋은 활동을 했다고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이다.

1년에 단 한 번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으면서 '올해도 착한 일 하나 했네'  라며 나를 토닥거렸던 생각이 나 얼굴이 화끈거려지는 12월이다.

법정 스님은 ‘동정’과 ‘자비’의 차이점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정이란 자기 자신은 상처받음 없이 남을 위로하려 드는 것이다. 때로는 남을 위로함으로써 위안을 얻는 그런 심리 작용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산스크리트어로 괴로워서 신음한다는 뜻이다. 이웃의 괴로움을 보고 같이 신음할 때 비로소 상대방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는 뜻이다.

2020년 12월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가 가기 전 '동정'이 아닌 '자비'의 마음으로 이웃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쯤은 실천해 보려 한다. 게으름뱅이에서 부지런한 사회운동가로의 변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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