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가 빠져나간다
입력 2020.12.04
지면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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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가 빠져나간다’는 법정스님의 책 아름다운 마무리에 실린 여러 글 제목 중 하나이다.12월 허한 감정의 그 표현이 너무 멋있어서 가슴에 담아두고 기억했다.회한을 담고있는 듯한 제목의 이 글에서 법정스님은 인도 자이나교가 한해를 잘 끝내는 방법으로 연말에 시행하는 ‘용서의 날’을 소개한다.용서가 주제이긴하지만 그날은 남을 용서하는 자신보다 용서를 구하고 사과하는 자신에 더욱 집중하는 날이다.자신의 과오를 낱낱이 기억해내 상대를 찾아가 사죄하고 그럴 수 없을 때는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쓴다.마무리를 회개로하면서 죄에서 자유로워진다.한 해를 돌아보는 것을 만족 성취같은 자기중심적 메시지보다는 용서나 반성 같은 타인과의 관계 속 이타적 감성에 두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굳이 종교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한해의 결산을 용서받는 자성으로 올곧은 자신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현명한 선택으로 여겨진다.사회학자 어빙고프먼은 ‘진정한 사과에는 잘못을 저지른 자아와 잘못으로부터 배우고 앞으로 더 잘하려는 좋은자아가 함께 작동한다’고 강조한다.제대로 한 사과는 경험해본 사람들 누구나 공감하는 최상의 치유 언어이다.코로나로 모두가 힘들었던 한 해이다.평범한 일상을 오롯이 감염병에 담보잡히고 살아왔다.그래도 한해의 빠져나감이 전혀 안 느껴지는 것만은 아니다.똑같은 상황에서도 잘 산 사람 잘못 산 사람은 구별될 것이고 나는 그 어딘가에 속했을 것이니 말이다.시간을 잘 쓰지못하고도 코로나를 핑계로 게으름과 어리석음 그리고 편협한 이기심을 이해받으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여느 12월과 비슷하게 나를 돌아보는 마음을 갖게 된다.연말의 헛헛함에 코로나까지 주눅 드는 요즈음이지만 12월이 마침표로 방점이 찍히는 것만은 아니기에 희망 또한 가져본다.법정스님도 아름다운 마무리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용서하고 용서받고로 훌훌 털어 새로움을 다지는 연말이 되자는 말이다.빠져나간 한해는 반드시 또 다른 한해로 우리곁에 온다.코로나에 대한 이적 노래 ‘당연한 것들’의 가사처럼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 빠져나갔던 소소한 일상부터 돌아올 것이다. 조미현 기획출판국장조미현 mihyunck@kado.net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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