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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7-04

    [전남일보] 아름다운 마무리 - 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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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 입력 : 2020. 12.13(일) 16:09
  • 최도철 기자


무심한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흘러 어느덧 12월이다. 봄과 여름의 기억이 아직 선연한데, 성급한 가을을 훌쩍 지나 맵찬 바람에 마음까지 시려오는 겨울이 온 것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 세밑이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새해 들어 자신과 약속했던 일들도 하나하나 되새김질 하게 된다. 톨스토이는 "한 해의 마지막에 처음보다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했는데 돌이켜보니 한 뼘도 나아지지 못한 것 같다.

 헛헛한 마음에 애써 자위를 하자니 그래도 건진 게 있다면 올해는 책을 머리맡에 두는 날이 많아졌다. 순전히 코로나 덕분이다.

 개중 기억에 남는 책들이 더러 있다. 시인으로 40년, 수도자로 50년의 길을 걸어온 이해인 수녀가 '해인글방'에서 펴낸 '그 사랑 놓치지 마라'와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김용택 시인의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는 몇 번이고 곱씹어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날, 산사에서 만나는 눈부신 고요와 적멸의 한때를 그린 이산하 시인의 산사기행록 '피었으므로 진다'와 법정스님 원적 10년을 맞아 추모특별판으로 펴낸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도 긴 여운을 남긴다.

 법정스님 글을 읽노라면 시가로 천억대인 고급요정 대원각을 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라는 절집으로 바꾸고, '창작과비평사'에 2억원을 기증해 '백석문학상'을 만들었던 기생 김영한(佛名 길상화)의 백석 시인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야기도 오버랩된다.

 법정스님의 글 가운데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산문집이 있다. 스님은 글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용서이고, 자비이다."라고 갈파한다.

 늘 그러했듯 아쉽고 허전한 세밑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법정 스님의 죽비이다.

 돌이켜 보면, 올 한 해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자연의 대역습으로 코로나가 창궐하고 그 기세가 날로 등등해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다. 세상은 더없이 소란하고 어수선하다. 잿빛 하늘처럼 음울하고 음침하다.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고 하지 않던가. 며칠 남지 않았지만 얼킨 실타래 풀 듯 세밑을 잘 갈무리하고 새 날을 기다리다 보면 어둡고 긴 터널 너머 어디쯤 형형한 빛이 비치지 않을까.
 

최도철 기자 docheol.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