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롭게 후원하기

언론

    • 23-07-04

    [국방일보] 낙과, 새로운 열매의 시작 - 20.12.23.

본문

낙과, 새로운 열매의 시작

12월이 되면서 임관 후 2년이 꽉 찼다. 군 생활을 계속할 나에게는 시간의 흐름일 뿐이었지만, 문득 의무 복무기간 3년 중 2년을 채운 동기들이 ‘D-365’를 세어나가는 것을 보니 남은 1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어딘가 분주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공허함이 엄습해왔다.

그것은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흡사 ‘빈둥지 증후군’과 비슷한 상황에서 오는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자녀를 독립시키는 모성에 비할 바는 안 되겠지만, 동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편하게 서로 업무를 돕고 일과 후에는 허심탄회하게 하루를 이야기할 수 있는 동기들을 떠나보내는 것은 상상만해도 괴로웠다.

내 마음의 변화는 책 한 권에서 시작됐다. 생각이 정리가 안될 때는 철학 관련 도서를 찾아 나서곤 한다. 그것은 망망대해에서도 길을 찾게 해주는 오래된 해도와 같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인류의 오래된 고민에서 시작된 만큼, 철학서에는 자신의 고민에 대한 각자의 답이 담겨있다. 그중 내 질문에 대한 답은 법정 스님의 책 『스스로 행복하라』 안에 있었다.

법정 스님은 본인의 출가를 ‘나무에서 과일이 떨어지는 것’으로 정의했다. 과일이 스스로 선택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가 이르매’ 자연히 그렇게 되듯이, 인간의 모든 것도 그러하다는 말이다. 낙과(落果)에 대한 법정 스님의 언급은 그것으로 끝이 났지만, 그의 일생과 불교 철학을 바탕으로 낙과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그려보면서 깨달음의 길로 나아갔다.

불교는 인생을 원인이 되는 ‘인(因)’과 조건이 되는 ‘연(緣)’의 끊임없는 반복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과일(因)이 때가 이르매(緣) 떨어진 결과로 생긴 낙과가 또 다른 원인이 돼 어떠한 결과가 만들어 진다는 이야기다. 낙과 속 씨앗에서 움튼 작은 새싹에서부터 열매를 품는 큰 나무로 성장하는 비하인드 스토리. 그곳에 깨달음이 존재했다.

‘결별이 이룩한 축복!’ 이형기 시인은 그의 시 ‘낙화’에서 영원한 이별마저 축복이라 말한다. 떠나보내는 것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빈 둥지’로 남는 것이 아니다. ‘빈 가지’가 돼 새로운 꽃을 피우는 자기 자신과 새로운 열매를 맺으러 가는 떠난 이에게 축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헤어짐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한층 성장하는 것이다.

군인이기에 많은 이별을 겪는다. 전속과 전입 그리고 전역과 임관은 만남과 이별의 서로 다른 말이다.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슬픔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슬픔은 결국 그 사람의 새 출발을 진정 함께 기뻐해주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 남아달라는 이기심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이별에 축복해주기’는 군인으로서 갖춰야 할 최선의 마음가짐이다.

“공군 학사장교 141기 동기 여러분 2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또 다른 임지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자신만의 씨앗을 찾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멀리서나마 기원하겠습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