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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 23-07-13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법정 스님의 선물 - 2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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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법정 스님의 선물

[아무튼, 줌마] 

이번 주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정재은씨가 저와 인터뷰한 며칠 뒤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의 작업실이 있는 건물에선 목요일마다 재활용품을 수거하는데, 그날 따라 아침 일찍 나갔더니 재활용품 수거장에 법정 스님 책 한 질이 놓여 있었답니다. 워낙 법정 스님 글을 좋아해서 ‘인도 기행’부터 웬만한 저서는 다 가지고 있는데, 작년 여름 필리핀에서 들어올 때 한 권도 못 들고 온 터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랍니다.

“마치 하느님이 주신 선물 같았어요. 심봤다, 했다니까요. 하하! 완전 새 책이라 경비 아저씨께 ‘이거 가져가도 되나요?’ 묻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법정 스님 글 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국수는 막 삶아서 찬물에 헹궈 먹는 국수’라고 했던 부분이 아직도 기억나요. 전시 끝나면 한 권 한 권 다시 읽어보려고요.”

그러고 보니 정재은 작가는 책벌레입니다. 스물넷에 결혼해 낯선 미국으로 건너가 살 때 힘과 위로가 돼준 것도 책이고, 두 딸 키우며 고민이 생겼을 때 지혜와 영감을 준 것도 책이라고 하네요. “미국 가자마자 아버님 간병을 해야 해서 서툰 영어 공부를 아이들 동화책 읽기로 시작했거든요(웃음). 미국 외교관 아내인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것이 정말 힘들었죠.” ‘The Great Alone’이라는 책을 읽다가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너무도 적절히 표현한 글귀를 발견하고 SNS에 올린 적도 있답니다. “딸은 연(kite)과 같다. 단단하게 잡아주고 때로 풀어주는 엄마의 강력한 줄(string)이 없다면 멋대로 날아가 구름 속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

그림이 잘 안 그려질 때도 무조건 걷고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외교관 가족으로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살 때, 어디 살든 마음 붙여서 할 수 있었던 게 책 읽기라 그런 것도 같아요. 그동안 읽었던 책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게 아닐까. 기도가 쌓이듯이, 책을 읽으면 그 지혜와 지식이 나도 모르게 쌓였다가 고비를 맞았을 때 길을 열어주는 것 같아요. 책의 위대한 힘이죠.” 그래서 여태 골프도 배우지 못했다네요.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웃음).”

이번 주에도 인터뷰에 못 담은 정 작가와 성 김 대사 이야기들, 지면에 다 싣지 못한 사진들을 ‘아무튼, 주말-뉴스레터’로 띄웁니다. 아직 구독을 신청하지 못했다면, 아래 QR코드에 휴대폰 카메라를 갖다 댄 뒤 구독 신청 화면으로 들어와 레터 받아보실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뉴스레터 읽으신 뒤 저희 부서 이메일(jumal@chosun.com)로 소감 보내주시면 답장 드리겠습니다.

책 향기로 가득한 가을 보내시길 빕니다.

출처 : 조선일보(https://www.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