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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7-17

    [법보신문] 수 천 가지 죽음의 마지막 목격자가 전하는 삶의 이야기 - 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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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천 가지 죽음의 마지막 목격자가 전하는 삶의 이야기


기자명 남수연 기자 
  • 불서 
  • 입력 2022.02.18 15:52 
  • 수정 2022.03.11 21:59 
  • 호수 1621 
  •  댓글 2

‘전통장례명장 1호’ 유재철 장례지도사가 만난 마지막 얼굴
“스님·대통령·어린이 누구든 고이 보내 드릴 때 참된 삶 배워”

대통령의 염장이
유재철 지음 / 김영사 / 288쪽 / 1만4800원

2010년 입적에 든 법정 스님의 법체가 서울 길상사를 떠나는 날 스님의 법체를 염습한 유재철 대표(오른쪽)가 운구차량을 인도하고 있다.
2010년 입적에 든 법정 스님의 법체가 서울 길상사를 떠나는 날 스님의 법체를 염습한 유재철 대표(오른쪽)가 운구차량을 인도하고 있다.

‘딱 한 사람 누울 수 있는 크기의 대나무 평상은 법정 스님이 앉은 자리만 닳아서 반질거렸다. 그 평상에 법정 스님을 뉘었다.…위패에는 이런저런 문구 없이 ‘비구 법정’ 네 글자만 썼다. 이 모든 것이 법정 스님 다웠다.…말씀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는 ‘무소유’를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한 것은 나를 비롯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큰 복이었다.’

2010년 3월11일 길상사 행지실에서 입적한 법정 스님은 다음날 송광사로 마지막 길을 나섰다. 관도, 상여도 없이 평소 사용하시던 평상 위에 궤색 가사를 덮은 채 행지실을 나선 법체와 ‘비구 법정’ 네 글자만 적힌 위패는 스님의 삶과 불교의 참된 가르침,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법정 스님의 법체를 염습하고 다비식을 진행했던 유재철 장례지도사는 “수의도, 관도 생전 스님이 준비하지 말라 하셨으니 꽃상여도, 거창한 위패도 스님이 결코 원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그날을 회고했다.

저자는 대한민국 전통장례명장 1호다. 불교계에서는 ‘연화회 대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식 전통장례, 즉 다비장에 관해 그는 단연코 독보적인 경력과 발자취의 소유자다. 동국대학교에서 ‘단체장’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국가장’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으며 장례문화에 대한 학술·이론적 지식까지 섭렵하고 체계화 시켰다. 30여년 간 그가 닦아놓은 길을 이제는 많은 이들이 ‘장례지도사’라는 이름으로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세상은 그를 ‘염장이’라 낮잡아 불렀다. 하지만 “삶에는 죽음이 있기 마련이고 자신 또한 언젠가 시신으로 남을 것은 너무도 자명한데, 많은 사람은 죽음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피하기 급급하다”고 안타까워하며 스스로를 ‘염장이 30년 차’라 부르는 그에게서는 인생에 대한 깊은 지혜와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장례지도사의 일을 시작해 이제 예순을 넘긴 지금 그는 지난 세월 품어왔던 고민들과 시도들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대통령의 염장이’라는 책의 제목은 무려 여섯 명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을 도맡은 그의 경력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책에는 법정 스님, 무진장 스님 등 널리 알려진 스님들을 비롯해 이름을 내지 않았던 산중 수행자와 평범한 이웃들, 심지어 저자의 친구와 친척까지 그가 만난 많은 이들을 염습하고 마지막 길을 함께 한 과정이 담겨있다.

마치 잠에 든 듯 편안한 모습의 망자를 보며 ‘닮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저절로 눈이 질끈 감겨 버릴 정도로 참혹한 고인의 모습을 대해야 할 때도 적지 않다. 평소 가까웠던 친구를 축 늘어진 시신으로 접했을 때는 그라도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워진다. 유가족들의 이견으로 장례절차가 수 차례 뒤바뀌기도 하고, 고인을 잘 모셔줘 감사하다는 유족들의 인사를 받기도 한다. 무엇하나 예측할 수 없고 무엇하나 당사자의 의견을 들을 수도 없는 일. 언제 전화벨이 울릴지 모르기에 ‘산 사람’과의 약속조차 잘 잡지 않는 그에게 오직 하나의 원칙은 ‘고인 중심의 장례’다.

“비록 색깔은 저마다 다르지만, 내가 보내드린 모든 분의 삶과 죽음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가 있었다. 늘 그 무게와 마주하며 살다 보니,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게 된다. 고인을 고이 보내드릴 때 아이러니하게도 참된 삶이란 무엇인지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그가 진행하는 장례식에서는 음악이 연주되기도 하고 고인이 평소 입던 옷이 무채색 수의를 대신하기도 한다.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관을 앞에 두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렇게 그가 어루만진 삶의 끝자락은 어둡고 슬프기만한 일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새로운 시작점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장례지도사란 어떤 직업인지, 망자와 유가족을 대면하는 방법,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현대에 맞는 장례의 의미와 방법 등을 현장 경험에 비추어 기록하고 있다. 장례지도사를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귀한 노하우다. 그저 호기심에 책을 집어 들었더라도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죽음이 남의 일만은 아니구나’라는 사실에 흠칫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놀라운 변화를 보며 ‘대한민국 전통장례명장 1호’라는 저자의 수식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20호 / 2022년 2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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