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서해안 시대] 법정스님12주기…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할 때
입력 2022.03.22 (10:57)수정 2022.03.22 (11:19)
■ 정윤심 아나운서 (이하 앵커): 글과 법문을 통해 무소유의 삶을 가르쳤던 법정 스님 우리 곁을 떠난지.. 올해로 12주깁니다. '시사 지지고 볶고' 오늘은 시사는 잠시 내려놓고 인문학 시간으로 법정 스님, 얘길 해보겠는데요. 오늘도 두 분 자리 함께하셨습니다. 특별한 분이시죠? 이 시간에 늘 재난 관련해서 이 분과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인문학으로 이 자리에 모신 문현철 국방부 합참 정책자문위원 나와주셨고요? 안녕하십니까.◈ 문현철 국방부 합참 정책자문위원 (이하 문현철): 안녕하십니까.■ 앵 커: 서남권 균형발전연구소 김학주 연구위원님 함께 하셨어요? 반갑습니다.◉ 김학주 서남권 균형발전연구소 연구위원 (이하 김학주): 반갑습니다. 김학주입니다.
김학주 서남권 균형발전연구소 연구위원, 문현철 국방부 합참 정책자문위원 ■ 앵 커: 문현철 교수님 법정스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이 자리 모셨습니다. 어떤 인연이 있으시죠?◈ 문현철: 그렇습니다. 인연은 신비로운 것 같습니다. 아무런 혈연과 지연이 없어도 그 만남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는 것 그걸 깨닫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상담 선생님께서 주신 ‘산방한담’이라는 법정 스님의 저서를 하룻밤에 다 읽고 또 묘하게도 그 다음주 일요일날 광주에 있는 베토벤 클래식 음악 감상실에서 스님과 만났습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앵 커: 그러면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 문현철: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1981년■ 앵 커: 아~ 1학년때 그리고 스님과의 인연이 그 이후로 계속 여러 가지 도움을 받으면서 이어지게 됩니까?◈ 문현철: 그렇습니다. 스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에도 계속 마음속 중요한 곳에 자리 잡고 많은 영향을 주시고 또 마음의 힘을 주시기 때문에 계속 지금 함께하고 계신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앵 커: 교수님 천주교 신자로 알고 있습니다.◈ 문현철: 그렇습니다. 참으로 귀한 인연이죠. 전 가톨릭 신자인데 불교의 수도자이신 스님과의 인연, 그래서 또 스님께서 수많은 책을 쓰셨잖습니까. 그런 원고료로 제가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4년간 제 등록금을 출판사 원고료로 내주셨습니다.■ 앵 커: 법정스님이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신◈ 문현철: 그렇습니다.■ 앵 커: 정말 특별한 인연이여서 거의 뭐 항상 떠나실 때까지 찾아뵈셨겠네요. 어떻습니까?◈ 문현철: 돌아가시기 전에는 거의 못뵀는데요. 특히 불일암에 계시다가 강원도■ 앵 커: 송광사 불일암에 계실때◈ 문현철: 예 송광사 불일암에 계실 때까지 거의 뭐 한 달에 한두 번은 쫓아가서 찾아뵙고 그랬는데 이제 강원도 오두막으로 떠나신 뒤에는 내가 그러면 안되겠구나 싶어서 거의 이렇게 찾아뵙지를 못했었고요.
출처 : 연합뉴스 ■ 앵 커: 기억이나요. 교수님이 송광사에서 다비식이 있을 때 그 다비식의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셨던 기억이 나는데, 김학주 위원님 부러운 눈빛으로 교수님 바라보시는데 법정스님의 이력이 어떻습니까?◉ 김학주: 법정 스님의 속명은 박재철이라고 하죠. 1932년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수영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로 유학을 오시고요. 1947년 9월 1일 정광중학교에 입학을 했다고 합니다.■ 앵 커: 목포에 정광중학교가 있습니까?◉ 김학주: 아마 그런 반응이 나오실거 같아서 제가 정광중학교를 잠깐 소개를 해드릴텐데요. 정광중학교는 1946년 3월 1일 목포시 무안동 3번지에 위치한 정광사에서 개교를 했다 라고 기록이 돼 있습니다. 이 무안동 3번지가 어디냐면 동본원사 목포별원입니다.■ 앵 커: 네네~◉ 김학주: 잘 아시겠지만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사찰이잖아요. 그리고 해방 이후에 한국의 스님들이 이 절을 인수해서 정광사로 이름을 바꿉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1946년에 정광중학교가 세워집니다. 근데 1948년에 이 학교가 광주로 이전을 하고요. 지금도 광주 광산구에서 중학생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교입니다. 그리고 정광사는 1957년 매각이 되고 이 자리에 교회가 들어서죠. 목포중앙교회가 들어서고 지금은 오거리 문화센터로 이용이 되는 곳입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1948년에 정광중학교가 광주로 이전을 하게 되니까. 법정 스님은 목포상고 지금의 목상고등학교로 전학을 하시게 되고요. 전쟁을 겪게 되죠. 1956년 전남대 상대에 전신인 목포초급 상과대학 3년간 마치시고 통영 미래사에서 출가를 하십니다. 그리고 쌍계사, 해인사, 송광사 등 여러 선원에서 수련을 했고요. 1970년대 후반에는 방금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던 송광사 뒤에 작은 암자인 불일암을 직접 짓고 거기서 천민한 삶을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1994년부터는 순수시민 운동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서 이끌으셨고요. 모두가 잘 아시겠지만 법정 스님은 수십 권의 수필집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고 또 무소유를 실천한 승려이시죠. 그리고 2010년 3월에 입적을 하시게 됩니다.
법정스님 마을 도서관 ■ 앵 커: 그러니까 ‘산방한담’으로 문교수님은 법정 스님과 인연이 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떠셨어요? 그 법정 스님의 책들은 여러 권 있으실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문현철: 네, 말씀하신대로 저는 ‘산방한담’을 제 고등학교때 상담 선생님 제가 전남대 사대부고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선생님께서 주셨는데 한두 페이지 읽다 보니까. 좀 마음이 편안해진 듯 하더니 계속 빨리 읽기 시작했어요. 제가 시골 출신이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말씀의 내용이나 서술이 아주 소박한 소재이면서도 그리고 대자연 속에서의 소재이면서도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면서 빨려들게 하더라고요.■ 앵 커: 어떤 책들이 있습니까? 스님이 남기신 책◈ 문현철: 지금 있는 책들은 다 많이 알고 계시지만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홀로사는 즐거움, 오두막 편지 그 중에서도 제가 또 버리고 떠나기, 홀로사는 즐거움 이런 책들이 가장 와 닿는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앵 커: 책을 두 권가지고 오셨는데 표지가 정말 오래됐어요. 물소리 바람소리, 홀로사는 즐거움 두 권의 책을 가지고 오셨는데 아~ 불일암의 스승 홀로 살 수 있는 그날 기다리는 그날, 문현철 이렇게 해서 2006년인가요?
물소리 바람소리 (출처:네이버) ◈ 문현철: 네네~■ 앵 커: 이때 스님이 직접?◈ 문현철: 아닙니다. 그건 제가 말씀듣고 제가■ 앵 커: 써 놓으신거고 네, 이런 책들을 얘기 해주셨는데 앞에서도 꽃의 대한 이야기 봄에 대한 이야기 하셨지만 이게 더 들어가면 인간에 대한 이야기 자연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이 되던데, 꽃 얘기를 해볼까 싶어요. 꽃을 잘 보아주는 스님만의 방법이 있으시더라고요. 잠깐 듣고 좀 얘기 나눌까요?법정스님: 매화는 반만 피었을 때가 보기 좋고,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가 볼만합니다. 또 복사꽃은 멀리서 바라볼 때가 환상적이고, 배꽃은 가까이서 보아야 그 꽃의 자태를 자세히 알 수가 있습니다.■ 앵 커: 김학주 위원님 어떠세요.◉ 김학주: 이 꽃 하나를 보는 이 스님의 시각이 참 놀랍고요. 처음 시작할 때 꽃이 피어야 봄이 온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참 자연이라는 말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만 자연은 ‘스스로자’ 그러할연‘ 이거든요. 스스로 그러한건데 사람들은 그걸 억지로 뭔가 바꿀려고 하니까 항상 문제가 생기는건데 있는 그대로 봐주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좀 그랬으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 커: 어쩌면 스님이 이 대지에 꽃이 피어나지 않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인간의 모습으로 계속 이기적으로 살아간다면 너무많이 소비하고 너무많이 파괴한다면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을 수 있다 라는 경고의 법문도 사실 하시거든요.◈ 문현철: 그렇습니다. 그런 그 자연에 대한 관찰, 통찰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스님께서 바라보신 혜안은 어찌보면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를 예고하셨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앵 커: 네, 우리에게 남긴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게 무소유, 무소유 책은 많은 분들이 아마 읽으셨을꺼에요. 스님이 강조한 정신들 법문 얘기 잠깐 준비했거든요. 잠깐 들어보시죠.법정스님: 무소유란 뭡니까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은 것,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은 것을 무소율고 해요. 그것이 무소유의 정신입니다. 소유물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는 이상으로 우리 자신이 소유해 버려요. 집이나 자동차, 가재도구 심지어 지식까지도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 그러한 대상들이 인간존재 자체보다도 중요한 것이 돼 버립니다. / 남을 도우라고 할 때 아이고 우리집 새끼도 못 도우고 있지만 할지 모르지만 크게 보면 또 다른 나라니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알든 모르듯 남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아 왔습니까. 친정 엄마 뿐이 아니고 남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아왔어요. 이거 생각해보세요. 이제는 우리가 도울 차례에요. 도울 차례라고 그래서 불교에서는 보시를 제1 바람일 첫째는 바람이라 하지 않습니까. 보시는 나누는 일이에요. 베푸는 일이 아니라 나누는 일이에요. 나눈게 꼭 물질적인 것 만이 아닙니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는거에요. 내 것이 있어야 나누지? 말도 안돼요. 나눈다는 것은 우선 마음이 가야 돼요. 마음이 가야 물질이 따라다니지 마음이 열리지 않고 물질이 어떻게 갑니까? 남을 도우며 살아야 됩니다. 남이란 거듭 말씀드립니다. 또 다른 나예요. 나의 분신입니다.■ 앵 커: 네, 무소유에 이어지는건 남과 나누라 이렇게 항상 이어집니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마라 이렇게 얘기 하거든요. 예, 문교수님◈ 문현철: 예, 불필요한 것을 갖지 말아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 생활 속에서 많이 찾아보고 실천할 수 있는거 같아요. 집을 정리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마음을 정리 정돈하는 문제, 이런 문제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시고 계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김학주: 마지막 말씀 중에요. 남은 또 다른 나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이 말씀이 너무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아요. 제가 법정스님의 얘기중에 다른 이야길 꺼내서 그렇지만 제가 좋아하는 책중에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있습니다.■ 앵 커: 오래된 미래!◉ 김학주: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라는 스웨덴 학자가 라다크의 삶을 보면서 저술한 책인데요. 오래된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절대적인 빈곤속에서도 풍요로움을 나눴느냐 이런 이야기를 볼 수가 있는데 거기서 그 학자가 어느 개울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소녀가 와요. 소녀가 와서 아~ 여기서 빨래를 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이 물은 저 아랫사람들이 마시는 물이다. 그래서 여기서 빨래를 하면 안되고 저쪽 가서 해라라는 건데요. 작은 이야기지만 그거는 뭐냐하면 관계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이거는 나에게 이렇지만 다른 사람에겐 이거다. 그래서 남을 또 다른 나로 인식하는거 이거야 말로 정말 우리가 이 시대에 꼭 새겨야 될 이야기가 아닌가 이런 이야기가 있고요. 법정 스님의 이야기는 핵심은 그런거 같아요. 버림, 비움 이런 것들이 무소유고 그 다음에 나눔의 정신 이런 것들인데, 법정 스님의 이야기를 쭉 찾아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별로 서열을 하지는 않으신데 그 암자에다 겨울이 되면 장작 가득 해놨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거는 누군가가 암자를 또 내가 아니어도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법정스님 마을 도서관 ■ 앵 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 김학주: 그렇죠. 그리고 그 꽁꽁언 시냇물을 깨서 물을 만들었는데 그건 산짐승들이 와서 물 먹을 수 있게, 이런 것들을 우리가 과연 잊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 보는 아침입니다.■ 앵 커: 특히 스님이 무소유 이후에 책을 발간하면서 너무 많이 알려져서 불일암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불일암 17년 만에 강원도 산골로 가시는 거잖아요. 그 이후에 내가 밥 값이라도 해야 되겠다 하면서 추진한게 맑고 향기롭게 아마 연꽃의 맑고 향기롭게 라는 말이 쓰여진 스티커 차량에 붙어있는걸 보셨을거 같은데 지금도 그런 조직이 돼 있는 전국지부에서 활동을 하더라고요. 봉사활동을 당시 전국순회를 하면서 많이 활동을 하게 되는데 맑고 향기롭게라는 부분 얘기를 좀 해볼까요? 그러니까 관념이 아니라 실천으로 세상에 어떻게 내가 이 말했던 것들을 실천해 나갈것인가를 직접적으로 행하신 거잖아요? 문교수님◈ 문현철: 맑고 향기롭게 저도 10년째 기부를 하고 있는데요.■ 앵 커: 관계돼 있는 재단에!◈ 문현철: 저는 또 스님께서 나눔을 실천하신 부분에 대해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사람이 아닌가 해서 늘 마음 빛이 큽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남은 또 다른 나의 분신이다 라고 하는 마름, 부드러운 말 한마디 이런 말씀들은 맑고 향기롭게라고 하는 그 단체를 통해서 계속 명명이 이어지도록 하셨지만 또 한편으로는 공동체 연대 우리 사회의 공동체 연대, 그리고 또 우리 모두가 가족이다 라고 하는 그런 메시지를 주신거 같아서 지금 가족이 와해 되가고 우리사회 공동체가 불안해져 가는 그리고 마음에 아픔이 많은 분들이 늘어나는 이런 세상에 남은 또 다른 나다 라고 하는 이런 말씀들 그리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 이런 점들은 공동체, 연대사회를 위한 매우 소중한 바탕이 되는 말씀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 커: 네네, 김학주 위원님!◉ 김학주: 맑고 향기롭게 라는 뜻은 맑음 이란 것은 결국 아까 말씀하셨던 비우면서 맑아지는 것 같고요.■ 앵 커: 자신의 마음이 맑아지는 거고◉ 김학주: 그리고 향기롭게 라는 것은 남한테 베푸는 거 일거 같아요. 근데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요. 과연 맑은 것이 향기로울 수 있을까. 정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면 향기가 날까. 이런 생각을 곰곰이 해봤는데 저는 법정 스님의 삶 속에서 답이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아까 법정 스님의 삶을 잠깐 소개해 드렸는데 법정 스님은 청년 시기에 한국전쟁을 겪게 됩니다. 20살이 채 안되는 시기에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하고 진리를 찾아 나서시죠. 그리고 1973년에는 저희가 잘 아는 장준하 선생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해서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를 하세요. 그런데 1975년에 수많은 젊은 목숨을 앗아간 제2 인혁당 사건을 이제 목격을 하시고 큰 충격에 빠지십니다. 그래가지고 그때 불일암을 짓고 수행의 길에 들어가신 거거든요.
법정스님 마을 도서관 ■ 앵 커: 당시에 사형선고 받았던 사람들이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바로 사형이 집행 되는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얘기를 하시죠.◉ 김학주: 그렇죠. 그래서 그때 불일암을 짓고 칩거에 들어가시는데 그리고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니까. 아까 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대로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시죠. 근데 1993년에 다시 세상에 나오세요. 그 이유가 뭐냐면 아까 아나운서님이 말씀하셨던 연꽃 얘기 하셨는데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이유 때문에 독립기념관에서 사라져 버리고■ 앵 커: 연꽃을 피웠던 것에서 다 뽑아내는!◉ 김학주: 예 그다음에 창덕궁 부용정 연못의 연꽃도 다 사라지고 그래서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라는 글로 발표 하면서 세속에 다시 관여를 하십니다. 그리고 1993년 그해에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준비 모임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시는데 저는 이 스님의 살아온 과정들을 쭉 보면서 결국 향기는 세상 밖으로 나오는거지 안에 가둬져 있는건 아니다. 그래서 나만 맑아지는건 아니고 세상을 맑게 하는 것이 결국은 향기로운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도 세상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도록 좀 실천을 해 보는 것들이 스님의 가르침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앵 커: 종교 화합에도 나서시잖아요. 김수환 추기경님 살아 계셨을 때 길상사를 찾아오기도 하고, 법정 스님이 명동성당 가서 강연을 또 하기도 했던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는데 오늘 법정 스님이 해남 출신이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그 생가터가 문내면에 있는데 김대영 리포터가 찾아 갔습니다. 잠시 한번 가보시죠.[김대영: 제가 지금 나와있는 이 곳은 해남군 문내면에 위치한 우수영 선두리 마을인데요. 법정스님이 해남 문내면 출신인거 혹시 여러분 알고 계셨나요? 나와보니까 이 곳은 우수영 마을 입군데, 마을 입구에 소울 아카이브관 이라던가 울다, 피다, 날다 라는 갤러리 만화점들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지금 법정스님 마을 도서관이 들어섰는데요. 선두리마을 같은 경우에는 89가구가 거주하고 있고 그 중에서 22가구만 현재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 저와 이 곳을 설명해주실 해설사 선생님 한 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안녕하세요. 문화관광 해설사 김선미입니다.' 여기가 바로 생가터입니다. 이 생가터에는 지금 생가가 들어서 있지 않고 평소에 법정스님이 남기셨던 좋은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볼까요?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저기 위에 올라가시면 법정스님의 인생 철학이 담긴 일명 ‘빠삐용 의자’라고 한번 올라가보실까요? 법정스님이 저 마을을 내려다 보면서 걸어가고 있는 그런 뒷 모습인데요. 거기에 평소 법정스님이 남기셨던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의 평소 스님이 말씀하셨던 글을 여기다 담아놨습니다’ 일명 빠삐용 의잔데요. 불일암에 계실 때 이 의자를 만드셨어요. 법정 스님께서 직접, 법정스님께서 이 의자에 앉아서 혹시 내가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의 뒤를 돌아보기 위해서 늘 이 의자에서 많은 생각을 하셨다고 해요. 네네, 여기는 법정스님이 태어나서 입적하실 때까지 그 과정이 소개가 돼 있어요. 법정스님이 남겼던 책 하나하나의 중요한 대목들 15권이 전시돼 있고 법정스님의 찻잔 한점이 전시돼 있습니다.
법정스님 마을 도서관 ■ 앵 커: 김학주 위원님 목포에도 스님의 흔적이 여기서 학교를 다니셨으니까 있지 않을까요?◉ 김학주: 짧게 말씀드리면 방금 빠삐용 의자라고 나오잖아요. 불일암에 이 빠삐용 의자가 이거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조형물이 올해 가을에 스님의 모교인 목상고등학교에 세워진다고 합니다.■ 앵 커: 아~ 의자가!◉ 김학주: 네네, 조형물이 세워질거고요. 바로 김대중 대통령 동상 옆에 세운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군데 소개할 수 있는곳이 정광 정혜원인데■ 앵 커: 유달산 올라가는 길목에 있잖아요.◉ 김학주: 그렇죠. 거기 정광 정혜원 앞에 보면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이게 청년 법정 스님과 사실 고은 시인의 만남을 상징하는 겁니다. 근데 고은 시인이 안타깝게도■ 앵 커: 미투 나왔을 때◉ 김학주: 미투 사건 때문에 한때 고은 시인의 동상이 철거가 됐다가 지금 다시 내려져 있긴한데,■ 앵 커: 인연 때문에, 법정스님과◉ 김학주: 예, 그렇습니다.■ 앵 커: 그런 흔적들이 이 곳에 남겨져 있다 이런 말씀이신데, 시간이 벌써 마무리 할 시간이 됐습니다. 스님의 손가락을 볼 게 아니라 스님이 가리키는 달을 봐야 되는데 그달에 담긴 그 정신, 마무리 말씀으로 문현철 교수님 먼저 좀 해주실까요?
법정스님 마을 도서관 ◈ 문현철: 부드러운 말 한마디 그리고 남은 또 다른 나다 라는 이 말씀, 이 말씀들이 바로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이고 이것은 우리 사회가 견디기 어려운 우리 삶을 잘 견디면서, 견디며 살아가는 세상을 말씀해 주신 것이 아닌가 싶고요. 이런 기후위기나 산불이나 홍수, 이런 많은 위기 같은 것들도 자연 생태계를 파괴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닌가 라고 하는 것을 자연 사랑에 대한 말씀을 늘 우리에게 당부하신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하면서 이 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김학주: 저희는 다 풍요로운 삶을 꿈 꿉니다. 그런데 풍요롭다라는 거는 내가 가진 것과 이 사회가 주는 것이 동일하면 되는데 이 사회는 가면 갈수록 많은걸 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빈곤하게 느껴요. 그건 뭐냐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이걸 버리지 못하면 저희는 계속 빈곤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제발 이 스님의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저희가 이해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야 될 것 같습니다.■ 앵 커: 항상 맑고 향기롭게가 강조했던 이웃과의 나눔, 이것도 관계잖아요. 관계를 정말 중요하게 나만을 생각하지 않은 그 관계 속에서 이웃과 나누는 마음을 한번 오늘 더 새겨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드네요. 여기까지 두 분 말씀 정리하겠습니다. 국방부 합참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현철 교수님 그리고 서남권 균형발전소 김학주 연구위원님 오늘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