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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12-17

    [중앙일보] 영상과 소리의 시대, 법정 스님의 가르침 - 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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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영상과 소리의 시대, 법정 스님의 가르침

중앙일보

입력 2025.10.02 00:25   업데이트 2025.10.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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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명예교수


11월 5일은 법정(法頂·1932~2010) 스님의 아흔세 번째 탄생일이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보다 반세기 이상 뒤의 사람이라 그런지 법정의 시대 인식은 만해와는 크게 달랐다. 만해가 마주한 현실은 있어야 할 것이 없던 시대였다. 그는 민족의 자유와 독립·자존을 잃었고, 이를 지켜낼 세력과 현대의 물질문명도 없다고 봤다. 반면 법정에게 1980∼90년대는 풍요와 과잉의 시대였다. 마을집이나 절집이나 모든 것이 지천으로 넘쳤다(법정 『오두막 편지』).


인간 정서에 빛과 소리 깊이 작용

화려한 시청각 자극은 진실 가려

현대인 영상·소리 중독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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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은 소리와 영상을 자주 언급했다. 자연의 소리나 예술의 빛을 통해 불교를 쉽게 전하려 했다. 세상을 좋은 것(善)과 나쁜 것(不善)으로 나눴다. 좋은 것은 푸른색으로, 나쁜 것은 누런색으로 칠했다. 푸른색은 개성과 창조성을 키워 본래적 자기로 향하는 길을 상징했지만, 누런색은 속세의 반복을 뜻했다. 법정은 실존주의 철학 용어인 본래적 자기 개념을 즐겨 사용했다. 본래적 인간의 특성은 개성과 창조에 있다. 석가모니는 본래적 자기를 스스로 구현한 존재였다.


법정은 본래성의 회복이 곧 감성의 회복을 동반한다고 봤다. 그는 인간의 정서에 빛과 소리가 깊이 작용한다고 믿었다. 빛에 관해 법정은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별밤’을 사랑했다. 소용돌이치는 성운, 달 같은 별, 해 같은 달로 가득한 하늘,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별밤을 보기 위해 프랑스 남부의 생레미로 가기도 했다.


법정은 귀도 예민하고 섬세했다. 갖가지 자연의 소리와 음악, 침묵까지도 들었다고 했다. 보이는 것조차 때로는 귀로 듣는다고 했다. 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와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서 아득한 모음(母音), 즉 어머니의 소리를 들었고 그것을 우주의 하모니라 부르며 생명의 일치를 느꼈다.


법정은 현대인이 기계 문명의 자손이자 이른바 신흥종교인 ‘텔레비전교(敎)’의 신자들이며, 영상의 노예이자 소리에 중독된 자들이라 했다(법정 수필 ‘풍요한 감옥’). 현대 매체가 만드는 도시의 소리는 대개 과잉과 포식을 낳으며 사유, 곧 생각을 앗아간다고 했다.


법정에 따르면 본래적 자기가 되려면 눈과 귀, 마음을 사로잡는 영상과 소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는 한때 함석헌 선생이 발행하던 ‘씨알의 소리’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한 자비심에서였다.


최근 ‘케데헌’이란 애니메이션 판타지 영화가 등장해 세상이 떠들썩하다. 그 안에 ‘Born to be, born be glowing, gonna be golden’이라는 가사가 강렬한 영상과 어우러져 스스로 빛나는 우리를 춤과 노래로 드러낸다. 얼핏 불교의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선언이 아니라 팬덤의 외침이다. 팬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승부는 규모로 갈린다.


그러나 이 퍼포먼스를 통해 악마를 물리치고 당당한 우리를 발견하며 행복해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그 집단도 법정이 말한 선(善)이 될 수 있다. 잘나가는 K컬처가 못난 K폴리틱스를 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도 이미 팬덤의 손에 잡혀 있어서다.


진정한 독존은 외부에서 밀려드는 영상과 소리의 중독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석가모니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즐기고 탐하며 매달리면 곧 악마의 속박을 받는다고 했다(『상윳따 니까야』 제35). 눈과 귀의 향락은 탐욕이 되고 탐욕은 집착으로 변해 끝내 악마(māra)의 노예가 된다. 이 원초적 악마를 내가 아니면 누가 물리치랴.


법정이 입적한 지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이제는 TV를 넘어 스마트폰, 스트리밍, 광고, 인공지능(AI) 영상까지 시도 때도 없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이 개명 천지에 어떤 권력자가 편향된 영상과 소리로 생각하는 백성을 없애려 드는가. 그 결말은 파국이다.


속세의 욕망은 앞으로도 강렬한 영상과 소리를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무리 요란하고 번쩍거려도 마음의 여백과 새벽 빗소리를 덮어서는 안 된다. 화려한 시청각 자극은 종종 나의 빛과 생각, 진실을 가린다. 법정은 그런 자극을 누런색으로 칠했다. 그는 독존과 자비의 아바타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명예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7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