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돌아가는 꼴이 재미없어 방안 일에 마음 붙이려고 도배를 했다.
이 산으로 옮겨온 후 꼭 5년만에 다시 도배를 하게 된 것이다.
일 벌이기 머리 무거워 어지간하면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데 고서古書에서 생겨난 좀이 많아 한지로 바른 벽이며
천장의 모서리를 볼품사납게 쏠아놓아 할 수 없이 다시 발랐다.
창호로 스며드는 햇살이 한결 포근하다.
이따금 바람에 파초잎 서걱거리는 소리가
어느 바닷가 모래톱을 쓰다듬는 물결 소리로 들리 때가 있다.
요즘 새벽이면 하얀 달빛이 뜰에 가득 넘친다.
텅 빈 산을 홀로 지키고 있을 때의 그 홀가분하고 넉넉한 내 속뜰의 빛이 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