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꽃망울을 제대로 피우지도 못한 채 스러져간 아이들, 구할 수 있음에도 행동하지 못한 어른들, 이런 말도 안 되는 세상을 만들어 버린 우리들. 욕망과 물질로 뒤엉켜 꿈틀대는 오늘날 사회에서 한 인물화가가 법정스님에게 대놓고 묻는다. “스님, 우리 사회를 구할 방법은 무엇입니까?”

서울 길상사에는 법정스님 진영이 있다. 수묵인물화가 김호석 씨가 조성한 것이다. 스님들의 진영을 그려온 김호석 작가가 전시회를 열었다. 광주시립미술관 기획초대전 &‘김호석-묻다&’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가 그린 법정스님 진영 2점이 선보였다.

스님의 진영을 전시하는데 전시 주제가 &‘묻다&’인 이유는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을 구제할 인물로 법정스님을 꼽았기 때문이다. 스님이 현재 생존하고 있다면 사회를 향해 어떤 법문을 했을까, 또 지금 세상의 혼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한다면 어떤 답을 내놓을지 끊임없이 고뇌한 작가의 깊은 성찰이 반영된 것이 이번 전시회다.

김 작가는 법정스님 진영을 조성하기 위해 3년의 세월을 쏟아 부었다. 스님의 책을 탐독하고 불일암, 길상사 등 스님이 거닐었던 곳을 찾았으며, 스님이 평생 고민한 불교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공부도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시대는 법정스님이 필요하다&’고.

“스님은 더 많이 가질 수 있었지만 갖지 않았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오르지 않았다. 고고하고 맑게 살면서 맑고 향기로움을 찬탄했다.” 현 시대의 대안으로 법정스님을 선택한 이유다. 또 하나 “더럽고 하찮은 것들을 과감히 쳐냈다”고 덧붙였다.

김호석 작가가 &‘묻다&’에 대해 스스로 내린 결론은 “답은 없다”다. “스님이라면 답은 당신에게 있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자정기의(自淨其意)&’를 덧붙였다. 김 작가는 “스님은 너를 맑고 깨끗하게 닦으면 답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3년 세월 쏟아부어

법정스님 진영 조성

“가질 수 있었지만

높이 오를 수 있지만

고고하고 맑게 산 스님,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

제대로 조성하기 위해

서적 탐독 수행처 탐방

주변 흙까지 채취하는

각고의 노력 기울여

&‘자정기의&’는 중국 당나라 당시 최고 문장가 백낙천이 불교의 대의를 묻자 도림스님이 답한 구절 가운데 하나다. “모든 악을 그치고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김 작가의 전시회에는 법정스님의 진영 등 20여 점이 내걸렸다. 진영 이외 그림들은 단순하지만 메시지가 담겨 있다. 법정스님이나 불교와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밤송이&’라는 작품은 원칙과 소신 없이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를 얘기한다. 밤송이는 겉으로는 가시를 세우고 있지만 자신의 몸을 벌려 알맹이를 주고 나중에 썩으면 퇴비가 되는 이로운 존재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또 웃고 있는 돼지머리를 그린 &‘돈. 돈&’은 돼지(豚, 돈)에게 절을 하며 더 많은 &‘돈&’을 바라는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김호석 작가는 2점의 법정스님 진영을 소개했다. 두 진영은 분위기가 다르다. 하나는 1980년대, 또 다른 하나는 1990년대 스님의 모습이다. 작가는 어느 것이 그 시대의 스님 모습인지 스스로 판단해보라며 끝내 말하지 않았다.

김호석 작가는 법정스님뿐 아니라 만해 성철 광덕 일타 관응스님 등 10여명의 고승대덕의 진영을 조성했다. 스님들의 품격과 수행력을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 책을 읽고 주석처를 탐방하고 제자나 지인들에게 들어보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지관스님 등 몇몇 스님들은 한 달 동안 곁에서 대화하고 공양을 함께하면서 인물을 파악했다.

정말 각고의 노력이었다는 것은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이가 2개나 빠졌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지금까지 모두 10개의 이가 빠지는 고통 속에서 작업했고, 성철스님 진영을 꾸미면서 눈썹이 모두 빠지기도 했다. 진영을 조성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법정스님이 거닐던 불일암 대숲 밭에서 흙을 채취해 그리는데 사용했다.

“법정스님은 선사로서 훌륭하다. 스님이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것은 가지지 않고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는 법정스님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6월8일까지 서울 사간동에 위치한 광주시립미술관 갤러리 GMA에서 열린다.

[불교신문3011호/2014년5월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