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아름다운 글로 많은 감명을 주신 법정스님은 특히 책 <무소유>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혼의 울림을 남겼다. 한 편에서는 물건이 남아 버리고 다른 편에서는 없어서 고통 받는 세상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피해는 개의치 않는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에 대한 스님의 혜안이 담긴 글이었다.
그런데 ‘무소유’에 대해 일반인들은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다. 이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단어가 주는 의미 때문이다. 조계종 스님들은 ‘무소유’지만 그 뜻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불교에서 무소유는 ‘공동의 소유’라는 뜻이다. 승가는 4명 이상의 출가자로 이뤄진 수행공동체다. 발우 가사 물병 등 일상에 꼭 필요한 몇 가지 물품을 제외하면 전부 승가가 함께 사용한다. 이처럼 승가에서 말하는 무소유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가 아니라 승가가 모두 함께 한다는 화합과 평등을 뜻한다.
승가는 재가자의 보시로 존속하며 승가에 대한 보시는 공덕으로 칭송받는다. 스님이 받을 수 있는 보시는 네 가지, 음식, 의복, 의약, 방사(스님이 묵는 요사)로 사사공양(四事供養)이라 한다. 사사공양을 받아 먼저 공동체가 나누고, 그래도 남으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쓴다. 승가는 보시 대상자이며 주체인 것이다. 보시를 받기 때문에 ‘유소유’라고 할 수 있겠으나, 승가공동체가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무소유이며, 받은 보시를 어려운 이웃이나 종단에 사후 유증(遺贈)을 통해 다시 보시하기에 회향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언론은 종단 ‘종법집’에 ‘스님들은 소유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들어 부동산을 취득한 혜민스님을 비난했다. 하지만 그 조항은 승려법 제34조2항 승려 사후 개인명의 재산의 종단출연 조항에 있다. 그 조항의 뜻은 사후에는 모든 것을 승가에게 기부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본래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조계종의 모든 스님들은 유언장을 작성하며 종단에 사후유증을 약속하는 것으로 이 법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종단 공익과 중생 구제 목적이라면 재산을 취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혜민스님이 주지로 있는 고담선원이 부동산을 매입한 것은 공익과 중생구제 목적에 부합한다. 종단에서 사찰명의 부동산 매입은 쉬운 일이 아닌데 고담선원이 부동산을 매입함으로써 사라지지 않을 불교 자산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환영할 일이다.
수행자는 현재 조금 부족할지라도 수행을 통해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공부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다려 줄 줄 알아야 한다. 그릇된 소견과 눈으로 대하는 언론과 사람에 휘둘려 수행자를 깔보고 업신여겨 비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젊은이의 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에게 “대왕이여, 어리거나 작다고 깔보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될 네 가지 존재가 있습니다. 첫째 왕족이 어리다고 깔봐서는 안되고, 둘째 독사가 작다고 깔봐서도 안되고, 셋째 불이 작다고 깔봐서도 안되며, 넷째 수행승이 어리거나 작다고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고 말씀하셨다.
왕자는 언제든 왕이 될 수 있으며, 독사의 독은 작다고 약한 것이 아니며, 불이 작아도 언제든 큰 불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행승이 소견이 좁고 경박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비난을 받더라도 함께 해서는 안된다. 스님이 비록 세상 사람들 눈에 차지 않더라도 언젠가 도를 깨달아 눈 밝은 선지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혜민스님과 함께 공원을 포행하는 길에 어느 불자가 인연 없이 보시하자 노력 없는 보시를 받기는 부끄럽다며 가까운 사찰의 대웅전 보시함에 넣던 모습을 기억하기에 스님의 회향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혜민스님의 첫 번째 베스트셀러 책 제목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스님은 지금 멈춤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인데, 분명 등불과 같은 반야의 지혜이길 기대하며 천천히 다시 만날 때를 기다려 본다.
[불교신문3639호/2020년12월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