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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7-04

    [문화일보] <북리뷰>부끄러움도 그대로… 詩 쓰는 수도자의 마음 밭을 보다 - 2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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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부끄러움도 그대로… 詩 쓰는 수도자의 마음 밭을 보다


문화일보입력 2020-12-2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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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의 말 | 이해인·안희경 지음 | 마음산책

수도 생활을 50년 한 인생은 어떤 경지에 오르지 않았을까. 여기에 문학 활동 45년까지. 모두 자신을 내려놓고, 또 부수고 하는 일의 반복이다. 세상일에 쉽사리 요동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의 밭을 분명 일궜으리라. 시 쓰는 수도자로, 깨달음과 섬세한 감성이 어우러진 글로 매번 우리를 위로해주는 이해인 수녀 말이다. 그런데 그도 울고, 아파하고, 또 뉘우친다고 한다. 책은 그런 이야기다. 벼르고 벼른 시로 승화시켰던 인간적 고뇌, 그리고 문학적 지향을 그의 ‘말’로 듣는다. 지난가을, 재미 저널리스트와 진행한 11번의 화상 인터뷰를 정리한 책은, 그가 직접 쓴 책보다 ‘직접적’이다. 묻고 답하는 가운데 그동안 강조해 온 사랑, 기쁨, 평화, 용서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해방둥이로 태어나 6·25전쟁 때 맡았던 방공호 퀴퀴한 냄새의 기억, 종신서원과 여성 수도자로서의 고민, 종교·문화계 인사들과의 우정, 병상 생활의 일화 등 지나온 삶과 번민들을 가감 없이 꺼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져진 마음 밭. 다시 그 속에서 건져 올린 말들을 본다. “숨어 있는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절대적인 있음 안에 스스로 서 있는 상태입니다” “사람마다 몫이 다르지만, 그래도 지향하는 바는 같습니다” “내 시간을 내서 나누는 것이 사랑이고 구원입니다” “기억하세요, 모든 것에는 끝이 있어요.” 특히 그는 지금 우리 모두가 ‘코로나 수련생’이라고 했다. 고립돼야 하는 당위성 속에서, 역으로 ‘골방의 영성’에 힘쓰라고 권면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안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이웃을 자세히 보게 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는 늘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것에 ‘새롭게’ 감사해야 한다고 독려했는데,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실습’할 때라는 것. “코로나19가 오기 전에 우리는 다들 집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방구석에 있는 이 시기를 골방의 영성을 찾는 하나의 과정으로 긍정하면 좀 더 성숙해질 것 같습니다.”

그는 또 ‘명랑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마음의 날씨를 자꾸 밝은 쪽으로 기울여야 한다는 거다. 그는 “내 속의 뜰을 잘 가꾸자”고 한 법정 스님의 말을 인용해 사색하고, 책을 많이 읽고, 잘 웃고, 삶을 긍정하는 ‘연습’을 하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삶에 대한 설렘이 생기게 될 거라며. “남의 인생을 살아주는 것처럼 시큰둥하게 살다 병에 걸려 죽으면 억울하잖아요.”

이해인 수녀는 책 서두에 쓴 ‘부끄러운 마음 그대로’라는 글 속에서 “어느 날 또 다른 먼 나라로 건너가기 전,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 여정을 축약해 놓은 것 같아 읽는 도중 잠시 멈추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 “부끄러운 마음”까지 오롯이 담아낸, 정금같이 귀한 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우리 곁에 왔으니, 담뿍 받아 마시자. 308쪽, 1만65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출처 : 문화일보(https://ww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