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멍상이라고 아십니까? 명상이 아닙니다. 멍상입니다. 명상이 진중하게 정진하는 거라면 멍상은 멍하게 그저 있는 것입니다. 명상은 아무래도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스님 덕에 멍상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순천 송광사에 불일암을 지어 놓으셨잖습니까. 불일암에서 하룻밤 지내면서 ‘아, 이게 멍상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멍상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불멍’요.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있는 것입니다. 파도멍, 바람멍, 나무멍, 구름멍도 있지만 불멍이 제일 아닌가 싶습니다. 모닥불을 피우지 못한다면 촛불을 켜더군요. 벽난로가 타오르는 영상을 재생시켜 불멍을 하기도 하고요. 넷플릭스에는 불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한 시간짜리 벽난로 영상도 있습니다. ‘플레이’하면 벽난로가 되는 것이지요. 연기와 그을음이 없는 벽난로입니다. 따뜻하다는 느낌은 들겠지만 집의 온도는 올라가지 않는 벽난로이지요.
벽난로가 있는 집을 빌려 머문 적이 있습니다. 천장까지 쌓아 놓은 장작의 풍취에 반했었는데 한 번인가 때고 말았습니다. 나무에 불이 붙고, 타오르는 시간은 좋았지만 그을음이 심했거든요. 환기를 하니 나무를 태워 만든 온기가 사라져버렸고, 재가 남았습니다. 이 비효율과 번거로움을 참으면서까지 벽난로를 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님. 불일암에서 아궁이로 하는 불멍은 달랐습니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쬐는데 금세 뜨거워졌습니다. 촛불만 보다 아궁이 불을 보고 있으려니 감당이 되질 않더군요. 아궁이 안을 쑤셨던 부지깽이에 붙은 불이 꺼지지 않아 한참을 애썼습니다.
정말이지 뜨거웠습니다. 손님이 하룻밤 묵고 간다고 나무를 더 많이 때주신 것 같았습니다. 웃풍이 심할 듯해 잠옷 위에 패딩 조끼를 입고 누웠는데, 기우였습니다. 방이 절절 끓었거든요. 암자는 낡아 기울고 있었고, 그래서 쌍미닫이문이 잘 안 닫혔지만 덧창이 바람을 막아 주었습니다. 소리는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바람이 웅웅대는 소리가 났습니다. 금속의 날카로운 소리도 났고요. 잠깐 잠이 들었는데 짐승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대략 이런 소리였습니다. 쓰읍쓰읍- 꽤애액꽤애액- 후우, 하 후우, 하. 멧돼지와 고라니의 이중창이었습니다. 멧돼지가 혀로 엄니를 쓰는 소리가 저렇구나 듣고 있었습니다.
생각들이 풀려나왔습니다. 눕기 전에 봤던 별이 떠올랐습니다. 별을 보여 주겠다며 스님의 맏상좌 덕조 스님이 암자 경내의 모든 불을 끄자 하늘에서 별이 쏟아졌거든요. 아, 후박나무와 굴거리나무는 잘 있습니다. 뒤안의 매화나무에는 꽃망울이 맺혔고요. “30여 년 전 이 암자를 지을 때 손수 심어 놓은 나무들의 정정한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한 생각이 차오른다. 후박나무, 태산목, 은행나무, 굴거리와 벽오동 등이 마음껏 허공으로 뻗어 가는 그 기상이 믿음직스럽다.” 스님이 불일암을 지으신 게 1975년 무렵이니 이 나무들은 50살 가까이 되었겠네요. 사람이 가고 난 뒤에도 나무들은 꿋꿋하게 서 있을 거라고 하셨죠? 정말 그랬습니다.
관음상 생각도 했습니다. 또 ‘불(佛)멍’입니다. 마리아상처럼 생긴 관음상이었습니다. 마리아상이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묻자 덕조 스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조각가 최종태 선생이 스님과의 인연으로 만들게 되었는데, 선생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요. 제가 본 관음상은 선생이 길상사에 화강암으로 만드신 관음상을 다시 작은 크기의 청동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관음이 관세음(觀世音)이잖습니까? 관세음의 뜻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보다’라는 뜻이라는 데 생각이 이르자 좀 놀랐습니다. 불일암에서 저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고 있었으니까요. 하룻밤 묵는다고 승풍에 젖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신묘했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아궁이 불을 쬐고, 나무들을 보고, 관음상을 본 게 다인데요.
곧 불일암에 좋아하셨다는 매화가 필 것 같습니다. 저는 피지도 않은 그 암향(暗香)을 그리워하는 중입니다. 제가 묵은 방에 걸린, 스님이 경신년 가을 불일암에서 적어두신 글을 다시 써봅니다. “홀로 들은즉 그 소리와 침묵이 신기롭더라.” /한은형 소설가
☞한은형 소설가는?
1979년생. 2012년 등단해 장편소설 ‘거짓말’,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등을 펴냈다. 미식과 애주가로도 유명해 음식 에세이 ‘그리너리 푸드’ ‘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등을 펴냈다. 본지 칼럼도 연재 중이다.
불일암(佛日庵)은…
올해 탄생 90주년을 맞은 ‘무소유’ 법정(1932~2010) 스님이 송광사 뒷산에 짓고 1975년부터 1992년 봄까지 17년간 머문 암자다. 매일 부처님이 오신다는 의미로, 위 채와 아래 채가 지척에 있다. 현재는 법정 스님의 맏상좌 덕조 스님이 위 채에서 수행하고 있다.
불일암 앞에는 스님이 가장 아꼈다는 후박나무가 서있다. 이곳에 스님의 사리를 모셨다. 지난 26일이 12주기였다. 법정 스님이 장작으로 직접 만든 일명 ‘빠삐용 의자’도 유명하다. 밖에 놓인 의자는 모조품이고, 진품(?)은 훼손 방지를 위해 암자 안에 고이 보관돼있다. 위 채에는 최종태 조각가가 제작한 청동 관음상, 아래 채에는 스님이 직접 쓰고 그린 서화(書畫)가 고졸한 아름다움을 발한다.
생전 스님이 걷던 대나무숲을 2016년 재정비한 ‘무소유길’을 따라 오르면 암자에 닿는다. 참배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묵언. /정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