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1일 법정 스님이 입적했다. 평생을 청빈으로 일관했던 스님은 관도 없이 무명옷 그대로 오두막에서 쓰던 평상에 누워 타는 불꽃을 따라 정토로 향했다. 스님의 유언이었다. 스님은 말빚을 지지 않겠다고 했다. 그동안 내놓았던 스님의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 당부했다.
그로부터 14년, 스님의 청빈하고 아름다웠던 삶이 아스라이 잊힐 무렵, 책 한 권이 툭 세상에 나왔다. 공개되지 않았던 스님의 강연록이다. 올해는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가 활동을 시작한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1994년 법정 스님이 ‘마음을, 세상을,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라는 실천 덕목으로 설립했다.
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출간됐다.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부산, 춘천, 대구, 창원, 광주, 청도 등 각지에서 스님께서 풀어낸 지혜의 말씀을 글로 담았다. 모두 미공개 강연들이라 큰 울림이 있다.
글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바른길을 알려주는 스님의 가르침들이 새록새록 하다. “행복의 척도를 소유에 두지 마십시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은 기쁨입니다. 인연이고 또 맺음입니다.” “흔히 고립과 고독을 혼동하기도 합니다. 고립이 아니라 고독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만의 깊은 고독에 빠져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떤 추상적인 시간이나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가상현실을 현실처럼 사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스님은 인간을 말하고 삶을 말하고 정신을 말하고 있다. 사람의 길과 수행자의 담박한 여정을 역설하고 있다. 스스로 사람임을, 그리고 마침내 부처가 될 불씨들임을 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 현재를 그리고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나를 일깨우는 죽비와 같은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김형규 전문위원 kimh@beopbo.com
[1738호 / 2024년 7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출처 : 법보신문(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24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