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법정스님 지도로
맑고향기롭게 수련회 첫 인연
운문사 대웅전 ‘신비의 스님’
계곡에 김장배추 씻는 학인들
빼어난 자연과 스님들의 조화
삼십여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운문사와의 인연이다. 당시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롭게’ 수련회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청도 운문사에서 이루어졌다. 수 십 명의 참가자들이 그곳에서 묵으면서 치러진 행사로서 별천지에 와서 몸과 마음을 닦아내는 뜻깊은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두 번째 날 새벽 세 시에 대웅전에서 법회가 열리고 나 같은 잠꾸러기도 그 시간에 맞추어 법당에 들어가니 이미 스님 한 분이 맑고 낭랑한 음성으로 법문을 하시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놀라운지 법문의 내용보다도 그 빛나는 이마와 머리, 다시 말해 깔끔하게 깎은 머리와 맑은 얼굴, 가사로 여며진 모습과 어깨의 흐름이 참으로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솔직히 법당 높직이 계신 우람한 금빛 찬란한 부처님들은 안 보이고 불빛에 유난히 반짝이는 스님 모습만 나의 시야 가득 다가올 뿐만 아니라 신비스러운 감동으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던 게 사실이다.
놀랍게도 그날 오전에 대웅전 앞마당을 지나는데 바로 그 ‘신비의 스님’께서 지나가고 계셨다. 스님은 대웅전 안에서 뵈었던 것과는 달리 우리가 흔히 뵐 수 있는 모습으로 맑고 빛나는 태양 빛 아래서 여전히 신비한 인상으로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무슨 배짱인지 스님 앞으로 다가가서 ‘제가 곤지암에서 도자기 하는 사람인데 서울 오실 때 저희 가마 한번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뻔뻔스럽게 말씀을 드린 것이 깊은 인연의 끈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나처럼 용기 있게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성향의 인간이 어떻게 그 놀라운 스님께 다가가 찾아주시면 고맙겠다고 요청을 했는지 아직도 불가사의한 기분에 잠겨있다.
그 이후 몇 차례 운문사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 신비의 스님이 바로 ‘일진스님(현 운문사 율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풍광으로 둘러싸인 사찰은 깊은 산속 별천지나 다름없이 고요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사찰들이 어디를 가봐도 그토록 아름답고 차분한 분위기로 우리 건축미의 정수를 품고 결코 떠벌리지 않고 고요히, 하지만 그 어떤 불가사의한 신비성의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은 곳이 없건만 이곳 운문사야말로 참으로 놀라운 모습으로 고요히 자리 잡고 있었다. 호거산이라는 우람한 산세를 거느리고, 맑디맑은 계곡의 물은 생명수처럼 절 경내를 제법 넓은 하천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한번은 스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김장 배추를 그 맑은 물에 씻고 계시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그 옛날 고향 집을 찾았을 때 느꼈던 푸근한 인정과 위안이 가슴을 두근대게 했다. 어찌 되었든 운문사라는 사찰이 그 깊고 깊은 오지에 이토록 넉넉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반가운지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운문사는 들어가는 길이 그렇게 신선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보를 막아 만들어진 넓은 호수를 지나면 바로 운문사 사리암 협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제법 넓은 하천을 이루고, 길 양편으로는 수백 년이 되었을 듯싶은 소나무들이 줄지어 참배객을 맞이한다. 운문사 입구에 닿으면 드넓은 광장을 펼쳐 보여주는데 우리의 마음까지도 활짝 열게 해준다.
법정스님도 때때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의 운문사는 비구니 스님들의 억척같은 노력과 인내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비구 스님들 같으면 결코 이처럼 아름답고 청정한 사찰을 이루어내지 못했을 거라는 말씀이었다. 거기엔 철저하게, 아니면 매섭게 뜻을 세워 해내시는 명성스님(현 운문사 회주)의 뜻과 노력이 없었던들 결코 이렇게 놀라운 운문사의 모습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거라는 말씀이었다.
법정스님과의 인연 역시 매우 극적인 말 한마디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곤지암에 가마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스님의 <서 있는 사람들>이란 수필집을 읽게 되었다. 그 수필집 가운데 인사동으로 다기를 구하고자 나오셨는데 쓸만한 것은 너무 비싸고 다른 다기들은 좋지 않아 못 구하고 돌아오셨다는 구절을 읽게 되었다. 당시 순천이 고향인 국문학을 한 불교 신자 여사장이 가끔 가마에 들러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는 중에 스님의 <서 있는 사람들>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는데 명색이 도자기를 하는 주제에 스님께 다기 한 벌을 선물 드렸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했던 것이다
바로 이 말로 인해 그 여사장은 어느 날 스님을 모시고 우리 가마를 찾아와 뵙게 된 것이다. 물론 꿈에도 예측지 못했던 해우였다. 스님께선 ‘참 때깔이 곱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셨는데 그 이후 때때로 찾아주시고 그때마다 할 소리 못할 소리 마구 지껄여대며 죄송하게도 불교를 모를 뿐만 아니라 나의 속물근성이 나오는 대로 스님을 대했던 것이 어쩌면 가까워질 수 있는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 식구들은 방학 때면 고향을 찾듯 불일암으로 스님을 뵈러 가서 한두 밤씩 자면서 즐거운 시간을 누렸다. 시주 한번 제대로 못하고 뻔뻔스레 스님 잡수실 것들을 먹어대고 세상 잡소리를 늘어놓았고, 스님의 그 정갈하고도 소박한 삶의 모습을 몸과 마음으로 흠뻑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답답한 문제를 명쾌하게 풀어주시고, 미운 놈 떡 한쪽 더 주는 심정으로 포근하게 감싸주셨다.
진정 그 당시의 불일암은 마음의 위안처이고 폭 안기고 싶은 고향의 품이었다. 스님의 무서울 정도로 엄격한 일상은 세속에 때가 절은 우리 같은 인간에겐 감로수 같은 법문이었고 몸과 마음을 한순간에 정화시키는 위력을 지니고 계셨다. 이렇게 스님을 그리워하면서도 이 순간 저세상에 계신다고 생각하니 더욱 뵙고 싶어 ‘법정스님! 다시 뵐 수 없을까요?’하고 새삼스레 슬픔에 잠기게 된다.
천상에 극락세계가 있다면 지상에는 운문사가 있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그 빼어난 자연환경과 스님들이 이루어낸 절의 경내는 숨 막힐 정도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눈에 거슬리는 게 없이 그토록 편안하고 시원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나는 경내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수백 년 된 반송 하나만 구경해도 운문사를 찾을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또 최근에 문을 연 운문사 역사문화관만 해도 그 앞 정원이나 한옥의 색동옷 같은 기와집이 그 자체가 아름답고 아담한 예술품이라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로 승가대학이 있어 명석한 두뇌와 훌륭한 정신을 겸비한 꽃다운 인재들을 교육하고 수행케 하는 사찰이다. 여기서 꽃다운 청춘이라 말한 것은 그런 특별한 뜻을 품고 수행하는 젊은이들을 장차의 일꾼으로 키워내는 뜻이니 얼마나 위대하고 자랑스러운가! 내가 곁에서 마주한 이런 청순한 젊은이들의 모습은 진실로 진지하고 고귀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에 찌든 나 같은 속물은 어쩐지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에 물기가 도는 것이었다. 이 거룩하고 존경스러운 광경에서 어쩌자고 방정맞게 조지훈의 ‘승무’의 한 대목이 떠올라 숙연한 기분에 싸이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나는 이 순간도 운문사라는 그 놀라운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의 심신이 정화될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디에도 운문사 같은 맑고 위대한 곳이 없다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불교신문 3874호/2025년6월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