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하는 무소유 정신
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59 범우사의 『무소유』
이사 준비를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이렇게 많은 것을 쌓아두고 살았나 싶다. 무소유 정신을 남긴 법정스님(1932~2010)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많겠고, 『무소유』란 책을 소유한 사람도 많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무소유(無所有)의 뜻을 제대로 파악한 분들도 과연 그렇게 많을까? 모임에서 언뜻언뜻하는 말씀들을 들어보면 무소유를 소유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뜻밖에도 많다. 무소유는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다.
범우사의 『무소유』 광고는 전5단×2㎝로 크기가 아주 작다. “독서의 생활화를 위하여!”라는 독서 캠페인의 카피를 맨 위에 배치하고, 책 제목을 헤드라인으로 썼다(조선일보, 1985. 7. 30.). 수필 「무소유」의 본문에 나오는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逆理)!”라는 문장을 인용해 책의 성격을 설명하는 보디카피로 썼다.
원문은 이렇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逆理)이니까.”(「무소유」 초판, 31~35쪽). 역설적 이치를 들어 무소유가 곧 소유라는 깊은 뜻을 전달한 셈이다.
범우사에서는 ‘범우문고’ 여러 권을 모아 전5단 절반 크기로 광고를 했지만 개별 에세이집 한 권을 별도로 광고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무소유』가 스테디셀러였기에 중판 기념으로 한 권을 별도 광고했으리라. 이 책은 두세 쪽에서 열 쪽 정도인 25편의 짧은 글을 모은 수필집이다. 여태동이 쓴 평전 『비구 법정』(2025)에 의하면, 범우사의 『무소유』는 앞서 수필 14편을 모아 펴낸 『영혼의 모음(母音)』(동서문화원, 1973)이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자 새로 쓴 수필 11편을 더해 개정증보판 성격으로 출간됐다고 한다.
새로 바꾼 책 제목은 <현대문학> 1971년 3월호에 발표된 수필 ‘무소유’에서 따온 것이다. 1976년 4월 15일에 115쪽의 문고판으로 초판을 발행한 이후 1985년 4월 말에 16쇄를 찍고, 1985년 7월 30일에 증보판을 발행해 1992년 말까지 35쇄를 찍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6년 초판의 책값은 280원이었지만, 광고가 나온 1985년 시점에는 1,000원이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책의 뒤표지에서 이 책을 이렇게 해설했다. “법정의 에세이 정신은 심산유곡의 불심, 고색창연한 불교신앙을 오늘의 이 현실, 끊임없이 사랑과 증오의 사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이 세계로 끌어내온 것이다. 그는 전통신앙으로부터 거의 절연된 현대의 사상시장에 새로 옷 입힌 불교의 정신을 내놓은 포교사이기도 하다. 그의 수필이 대부분 짤막한 일상의 단상이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이 편린들을 통해 새로이 발전하는 현대적 모습이다.” 이 책은 초판 이후 지금까지 400만 부 넘게 팔렸다니, 이 작은 책이 한국 사회에 그토록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을 국민적 수필집이라 불러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 스님은 난초 두 분(盆)을 정성스레 기르던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갔다가 뜨거운 햇살 때문에 뜰에 내놓은 난초가 시들어 버릴까 봐 허둥지둥 황급히 되돌아온 경험을 예로 들면서, 난초에 집념을 쏟은 자신을 돌아보며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절절히 느꼈다고 수필에서 고백했다. 나아가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으며,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드는 세태를 비판했다.
범우사의 『무소유』 초판 표지(1976)
스님은 “만약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所有史)에서 무소유사(無所有史)로 그 향(向)을 바꾼다면” 사람이든 국가든 절대로 싸우는 일은 거의 없으리라고 전망했다. 스님이 제시한 무소유의 참뜻은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뜻도 궁색한 빈털터리로 살라는 뜻도 아니었으니, 소유가 적을수록 좋으며 무(0)에 이르면 가치가 극대화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탐욕으로 가득 찬 한국 사회에 불필요한 것들을 과도하게 가지려고 애쓰지 말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만 가지고 절제하며 살아가라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이 책을 10대~20대 시절에 읽으면 무소유의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듯싶다. 나도 고등학생 때 이 책을 놓고 친구와 다툰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마치 속세를 초월한 도인처럼 무소유의 가치를 강조했는데, 당시에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소유해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무소유의 가치를 말하느냐며 쏘아붙였다. 대학입시에서 몇 점이라도 더 올리려고 애쓰던 그 시기에 무소유란 말이 어린 고교생에게 가당키나 했겠는가.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어떤 물건이 우리에게 필요할지라도 거기에 마음이 얽매인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필요하다면 명품 백을 사야겠지만, 식당 자리에 가방을 놓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간다면 그 가방에 구속되는 격이다.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이 무소유 정신이지 싶다.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도 필요 이상의 탐욕과 집착(執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욕심부리지 않고 집착하지 않았다면 어려움의 씨앗이 아예 뿌려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에 달려 있다. 가톨릭 신앙에서도 절제(節制)를 강조한다. 과잉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절제는 인생의 중요한 가치다. 집착에서 벗어나 절제하는 무소유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이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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